우리나라 대표 언론기관의 중진들을 모시고 이렇게 말씀을 드린다는 것이 매우 부담스러워 오늘 참석을 결정하기에 앞서 고민을 했었다. 하지만 이런 기회가 쉽지 않은데다 여전히 그 기능과 역할에 대해 많은 홍보가 필요한 동반성장위원회의 여러 측면들에 대해 언론에 소상히 말씀드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해 과감히 참석을 결정했다. 그리고 이번 기회를 통해 세계적인 경제위기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상당한 수준의 성장을 추구해야하는 등 우리경제를 둘러싸고 있는 작금의 난국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동반성장이 최고의 해법이라는 말씀을 다시한번 강조하고 싶다. 그동안 한국경제는 시대적으로 적절한 성장 모멘텀을 지속적으로 구축하면서 성장을 이어왔지만 이같은 상황은 이제 시대적 전환점을 맞고 있다. 한국경제는 정부 주도적 경제정책을 바탕으로 성장지향, 대외 지향적, 공업화 전략 등을 바탕으로 오일쇼크, 외환위기, 유럽발 금융위기 등 수많은 난관 속에서도 꾸준히 성장을 이어왔으며 나름의 성과도 있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는 우수한 경제를 이룩했다. 하지만 이같은 상황은 이제 한계에 도달한 느낌이다. 

동반성장에서 성장의 새로운 모멘템 찾아야

   실제 한국 경제는 지금 치열한 성찰과 전망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자원을 많이 투입해 물건을 값싸게 만들고, 시장에 진입해 경쟁에서 이기고, 시장을 선점한 다음 점유율을 높이면 승자가 될 수 있었다. 1차원적이고 단선적인 경영방식이면 충분했다. 하지만 현재에는 치열한 경쟁(BRICs 등 신흥국의 급속한 성장), 복잡한 경영환경(기후변화와 녹색성장, 글로벌 경제의 불안정), 사회적 요구(기업의 사회적 책임, 윤리적 경영)가 작용하면서 다차원적이고 복합적인 경영방식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더욱이 최근 세계경제는 완연한 성정둔화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글로벌 경영환경은 악화되고 사회적 압력과 요구는 증가하고 있다. 당연한 결과로 오늘의 경영환경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어려워지고 있다. 과거의 경영방식이 1차원이었다면 치열한 경쟁과 복잡한 경영환경, 사회적 요구가 증가되는 등 다차원적 경영방식으로의 변화가 필요한 시대가 됐다. 이는 달리말해 우리에게도 지식경영, 기술경영, 윤리경영, 스피드경영 등 새로운 트렌드에 맞춘 능동적 대응, 새로운 성장방식으로의 전환, 새로운 성장동력 모델의 발굴, 변화에 맞춘 기업문화의 진화가 필요하게 됐다는 이야기다. 이는 바로 세계 어디에도 없는 새로운 기구인 동반성장위원회가 한국에서 출현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기도 하다.
  동반성장위원회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가끔 “선례가 없는 기구를 만들어서 왜 분란을 조장하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세계 어디에도 선례가 없는 것을 한국이 주도하면 무슨 문제가 있는가? 한국은 이미 세계 10대 경제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전자와 가전 넘버1, 철강 넘버3, 자동차 넘버4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 첨단을 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변의 시선을 너무 의식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라면 지혜를 모아서 제대로 만들어내 세계 앞에 내놓을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시작한 실험이 세계의 표준과 모델이 될 수도 있다는 당당한 자세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자신감을 보이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나서 동남아를 순방하고 러시아도 다녀왔는데, ‘동반성장’이라는 한국의 새로운 실험에 주변국 인사들이 많은 질문을 던지며 큰 관심을 보였다.

사회적 책임(CSR) 넘어 공유가치 창출(CSV)로

  그렇다면 동반성장 정착의 조건은 무엇일까? 앞서 말씀드렸듯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 경제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같은 새로운 성장동력은 이제까지와 같은 요소투입형 성장방식으로는 만들어 낼 수가 없다. 결국 기업의 지능화를 통해 사회, 인류, 환경, 문화의 가치에 기여하면서 기업성장의 모멘템을 확보해야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같은 변화를 위해서는 여러 경제주체들의 변화와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대기업의 역할이다. 대기업의 역할이 중요한 것은 우리경제에서 대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글로벌 무대에서 월드 챔피언으로 활약하는 대기업이 무척 많아졌다. 과거에는 대기업 하면 삼성, 현대, 대우, SK, LG 등 소수만 떠올렸다. 하지만 조사해보니 대기업 숫자가 무려 1852개나 되었다. 여기에다 동반성장의 방향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에서 ‘공유가치 창출(CSV)’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전자가 시혜적 차원에서 협력사와 이익을 배분하거나 사회에 환원하는 소극적 의미를 갖는다면, 후자는 기업의 혁신을 통해 국가적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적 가치를 높인다는 적극적 의미를 갖는다. 이런 의미에서 이제 우리 대기업들은 한국 경제의 리더라는 이름에 걸맞게 공정경쟁과 동반성장의 기업문화를 주도해야 할 새로운 책무를 부여받았다고 할 수 있다.
   대기업과 함께 동반성장의 다른 한축을 이루고 있는 중소기업의 역할도 중요하다. 그동안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많은 보호를 받아왔으며, 정부나 여론 또한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일단 우호적인 시각을 견지해 왔었다. 하지만 이제 중소기업들도 대기업의 도움만 받으려 하지 말고 중소기업 간 공정경쟁 확립, 기업가 정신 함양, 자체 경쟁력 확보, 일자리 창출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중견기업으로 충분히 갈 수 있는데도 지원을 계속 받기 위해 분사를 하고 회사 이름을 바꾸는 등은 악습은 버려야 한다.
  동반성장 문화가 조기에 확산되고 또한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시민과 NGO의 역할이 어떤 측면에서는 당자자격인 기업의 역할보다 더욱 중요하다. 동반성장의 발동은 정부가 걸 수 있지만 정부의 역할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지속적 감시와 검증은 시민과 NGO의 몫이다. 정부가 동반성장위원회를 초기에는 청와대 직속기구로 출발한 이후 민간위원회로 출범시킨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실제 동반성장위원회는 완전 민간인 신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는다. 더욱이 IT강국인 한국의 시민들은 SNS라는 강력한 도구를 가지고 있다. 어느 기업이 시장경제를 교란하는 반사회적 행위를 저지르면 정부에서 발표하기도 전에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등을 통해 삽시간에 퍼져나간다. 실제로 동반성장위원회가 기업의 실명을 밝히지 않고 부당행위를 발표한 적이 있었는데, 시민들은 SNS를 동원해 ‘귀신 같이’ 그 기업이 누구인지 밝혀내기도 했다.

기업도 이타(利他)를 통해 이윤을 추구하는 시대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라져야 할 것인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세상은 끝없이 변한다. 그런데 옳은 방향으로 변한다”는 말을 남겼듯이 기업도 지속적으로 변해야 한다. 이제는 자본, 경제력, 브랜드 등 유형 자원을 기초로 하는 ‘하드 파워’, 인재, 지식, 네트워크 등 무형 자원을 기초로 하는 ‘소프트 파워’를 넘어 ‘스마트 파워’의 시대가 왔다. 그런데 ‘스마트 파워’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소프트 파워’를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 이 2개의 용어는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의 조지프 나이(Joseph Nye) 교수가 처음 사용했는데, 그는 소프트 파워란 ‘타율적 명령’이 아닌 ‘자발적 동의’를 통해 얻어지는 것으로 매력을 통해 기존에 있던 지식과 가치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라고 봤다. 실제로 소프트 파워의 개념을 도입한 GE와 MS 등 초일류 기업은 ‘지식경영’과 ‘인재경영’을 통해 ‘창조경영’과 ‘행복경영’을 추구했다. 특히 GE는 ‘베스트 프랙티스’라는 고유의 벤치마킹 방식을 통해서 초우량 기업들이 성공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각 분야별 세계최고의 경영기법을 신속하게 도입, 실천하는 데 성공했다. GE와 MS는 ‘사람’을 회사의 가장 중요한 자산으로 봤다는 공통점도 있다.
   그렇다면 왜 ‘소프트 파워’에서 ‘스마트 파워’로 진화해야 할까? 기업은 ‘어떻게 1등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지속적으로 1등을 유지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답해야 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배려하고 협력하는 동반성장을 통해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경영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스마트 파워’는 해답의 단서를 제공한다. 스마트 파워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실패한 기업의 사례가 있는데, MP3 플레이어 브랜드의 최강자였던 아이리버가 대표적 사례에 속한다. 아이리버는 초기에 고객을 진정으로 배려하는 마음이 스며든 제품을 개발하고 생산했다. 고객과의 쌍방향 커뮤니티를 만들어 지속적인 제품개선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경영자의 인재를 사랑하는 마음과 인간적 매력도 뛰어났다. 이런 것들이 국내시장 70%, 세계시장 25%의 막강한 점유율을 자랑하는 기업으로 성장하게 했다.
   하지만 성공에 대한 지나친 자만심이 아이리버 경영진으로 하여금 시장의 정서를 무시하게 만들었고, 고객의 마음을 배려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시장독점에 대한 지나친 자만심이 모든 것을 망치게 했다는 점에서 아이리버는 올 초 파산한 코닥과 닮았다. 120년 동안 필름시장을 지배하던 코닥은 눈앞에 보이는 수익에 연연하며 변화를 거부하다가 망하고 말았다. 스마트 파워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대가를 톡톡히 치른 것이다. 최근 ‘강남 스타일’로 집중조명을 받고 있는 가수 싸이는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고백했다. 기업도 이타(利他)를 통해 이윤을 추구하는 시대를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결론적으로 “기업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지속성장이다. 그런데 지속성장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은 사실 ‘이익 추구’가 아니라 ‘사회적 공감’이다. 기업은 모든 가치의 공유를 실천하고 그것에 기반한 기업 이미지를 새롭게 창조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먼저 ‘나의 이익은 상대방의 손해를 대가로 얻어지는 것’이라는 고전적 개념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는 지금 상생경영과 기업의 따뜻한 가치를 중시하는 자본주의 4.0시대를 살고 있다. 제품만 좋으면 소비자가 구매하던 1.0시대, 고객만족과 차별화를 추구하던 2.0시대, 고객만족을 넘어 고객가치를 만족시켜야 했던 3.0시대는 이제 한참 지난 이야기들이다. 이제 우리도 따뜻한 기업, 차별화된 가치, 동반성장 문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자본주의 4.0 시대를 열어가야 하며, 또한 이를 바탕으로 이타적 자율경영과 공유가치 창출을 목표로 하는 새로운 배려경영의 시대, 즉 자본주의 5.0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변화에 맞춰 진화할 것인가? 아니면 정체할 것인가? 바로 우리가 선택할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