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렇게 우리나라 대표 언론계 중진들을 모시고 이야기 나눌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해 먼저 감사드린다. 현직을 떠나 상당한 시간이 지난만큼 이제 여러 현상들에 대해 소신을 자유롭게 말씀드릴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나이가 70을 넘고 보니 여러분들 앞에서 말씀드리기가 두렵고 다소 쑥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귀한 기회를 주신만큼 지난 공직 경험을 토대로 최근 우리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점들에 대해 ‘정치와 경제’라는 주제로 평소 생각해 온 바를 간략히 말씀드리겠다.

최근 우리 경제의 흐름을 간단히 정리한다면 외형적으로는 나무랄 곳이 별로 없다고 할 수 있겠다. 부존자원도 없고 국토의 70% 이상이 산악지형이라 가용면적도 좁은 한국이 세계시장에서 유수의 기업들과 치열한 경쟁을 펼치며 수출과 무역 규모에서 세계 7위와 8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GDP 14~15위, 국민소득 3만불 등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대단한 성취를 보이고 있다. 경제적인 성과와 함께 G20 주관, 핵안보정상회담 등 세계적으로 중요한 대규모 국제적 행사들은 성공적으로 개최하면서 국가적인 위상도 상당 수준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우리사회 내부로 눈을 돌리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사회 각 부분에서 그동안의 압축성장에 따른 문제점들이 돌출하고 있다. 안타깝지만 우리는 자살율과 이혼율에서 1위를 기록중이며, 출산율은 최하위 수준이다. 사회적 갈등수준 또한 최고조에 달해 안타까운 일이지만 홉스가 말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진행되는 한계상황에 도달한 느낌이다.

물론 이런 갈등이 모두 나쁘다고는 할 수 없으며, 긍정적인 측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불거지고 있는 성장과 분배, 복지와 증세 등의 끝없는 논쟁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런 갈등과 대치에 따른 사회적 차원의 낭비가 도를 넘을 정도로 극심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그동안의 기적같은 성장이 한계에 도달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도 많다. 다수 전문가들은 오늘날 우리사회의 혼란상을 너무도 급속히 성장한 물질문명과 이를 따라가지 못한 정신문명의 갈등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따라서 그만큼 문제의 해결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또 쉽지도 않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의 국운이 다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오늘날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더 나은 미래로 향할 수 있는 기회가 여전히 남아있다.

갈등과 대치... 사회적 비용 도를 넘을 정도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대면해 보면 절망적인 상황이 많지만 외부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평가가 높다. 일례로 CNN은 한국의 10대 강점(특징)으로 스마트폰 보유 및 활용률, 신용카드 최다 사용, 노동시간 최장, 성형유행, LPGA 석권, 독특한 음주문화 등을 들었다. 이는 그 내용이 맞고 틀림을 떠나 한국의 이런 사회문화적 특성들이 CNN의 보도 대상이 되었다는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보도 시각 또한 매우 긍정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다. 유럽의 경우 신간서적이 나오면 2~3개 국어로 변역해 동시에 출간하는 것이 관례인데 변역 대상국에 최근에는 한국이 포함되어 한국어 번역본이 다수 출간되고 있다. 한국에 대한 평가가 유럽에서도 그만큼 높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문화컨테츠 시장에서의 한국의 위상도 대단하다. 세계 최고라고 자부하는 할리우드 영화가 제일 먼저 노리는 것이 바로 한국시장이다. 문화컨텐츠의 경우 한국 수도권에서의 성공이 상업성 판단의 기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의 수도권은 세계 문화컨텐츠의 test bad가 되고 있다. 이는 세계 어디에도 한국의 수도권처럼 좁은 지역에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과 교육 수준을 갖춘 2000만명의 인구가 밀집해 살고 있는 나라가 없다. 따라서 한국 수도권은 세계 최고의 test market으로 부상하고 있으며, 단시간에 성공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최적의 시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의 수도권에서 통하면 세계 시장에서 통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지난 외환위기의 경험 탓인지 몰라도 우리는 새로운 금융위기의 가능성을 걱정하고 있지만 이것 또한 세계적인 시각과는 차이가 있다. 최근 미국 FRB는 미국의 통화완화 종료후 문제점 안전도 검사에서 한국을 안정성 1위 국가에 포함 시켰다. 안정성 1위 국가에 포함된 나라는 아시아에서는 한국과 대만 정도다. 경제 민주화 정도 평가에서도 한국은 10점 만점에 8~10점권에 포함되어 20위를 기록하며 최고 수준으로 평가 받았다. 전체 평가대상 167개 국가 중에서 이 등급을 받은 나라는 25개 국가로, 경제규모가 일정 수준 이상인 나라 중에서 한국보다 높은 평가를 받은 나라는 독일과 영국 정도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미국도 한국보다 한단계 낮은 21위였다.  

 외부 시각...경제안전도, 민주화 모두에서 높은 평가

    민주화 수준도 마찬가지다. 국내에서는 야당을 중심으로 독재 운운하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객관적인 평가는 이런 주장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최근 만난 한 외국 친구에게 한국에 대한 인상을 물었다. 그는 한국은 너무 욕망수준(기대치)이 너무 높은 나라라고 말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한국 국민들이 지난 시절. 박정희 대통령의 리더십을 현재의 대통령에게 기대하고 있으며, 18년 압축성장의 결과를 또 기대하고 있다. 만일 그런다면 지구상의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라고 반문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합당하지 않다”고 더했다. 종합해 보면 한국은 그동안 이룬 상당한 물적 토대 위에 민주주의도 상당히 발달한 대단한 나라로 평가 받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작금의 갈등 상황을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가. 최근 우리사회의 갈등은 정치적 리더십과 많은 관련이 있으며, 따라서 여기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잠깐 이야기의 방향을 돌려보자. 뉴욕에는 여러분이 알고 계시는 존 F 케네디 공항 외에 라과디아 공항이 있다. 라과디아는 1930년대 판사로 재직한 후 뉴욕시장으로 선출되어 많은 업적을 남겼던 라과디아의 이름으로, 그분과 관련된 일화는 여러분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간략히 소개하면 1930년대 대공황 시절 순회 재판에서 라과디아는 어느 날 빵을 훔치다 잡혀 온 한 흑인 노인을 재판을 진행하게 된다. 식구 10명에 3일을 굶고 빵을 훔치게 됐다는 설명에 라과디아는 이유가 무엇이던 법을 어긴 것은 잘못이니 벌을 받아야 한다며 10달러의 벌금을 선고 했다. 이어 앞으로 법을 어기지 말고 가족을 위해 노력하라는 의미에서 자신에게도 벌금 10달러를 부과했다. 이어 배심원들에게도 어려운 동네 이웃을 살피지 못했다며 각각 50센트의 벌금을 부과해 모인 57달러를 그 노인에게 전달했다. 그는 이어 뉴욕시장에 당선되어 많은 업적을 남겼고, 그의 이런 업적들을 기리기 위해 후일 건설한 공항 이름을 라과니아로 명명한 것이다.   

민주항쟁 이후 갈등 후유증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이야기를 다소 장황하게 인용한 것은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소통과 이해에 바탕을 둔 이런 리더십이란 생각에서다. 만일 이런 판결이 오늘날 한국에서 내려졌다면 어떤 반응이 나왔을까. 아마도 라과디아가 이런 판결을 내렸을 때와는 사뭇 다른 반응들이 나왔을 것이다. 최근 IS라는 극단적인 이슬람 종교집단에 의해 무참히 참수를 당한 일본 청년의 부모 반응에서도 배울 점이 있다. 그 어머니는 방송에 나와 자식을 잃은 자신의 슬픔은 애써 감추며 자식의 문제로 정부와 국민에 폐를 끼쳐 미안하다며 오히려 사과의 말씀을 했다. 이런 반응들은 그동안 우리국민들이 중동지역 선교사 참수 등 유사한 사례에서 보였던 이기적이고도 극단적 자기중심적인 반응과는 너무도 다르다. 이런 일들은 정말 반성할 일로, 이제는 끝내야 한다.    이런 상황은 정치적 리더십과 관련이 많다. 정치권의 논쟁을 보면 많은 경우 자신과 다른 주장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뒤집는 반응을 보인다. 이렇다 보니 당연히 어떤 사안에 대해 완전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일례로 국회선진화법을 보면 우리사회의 한계를 보는 느낌이다. 정치권이 배워야할 것은 특히 독일이다. 독일의 정치권이 여와 야를 넘는 소통과 타협을 통해 안정된 리더십을 발휘하고, 이를 통해 사회적 통합이 이뤄지면서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고 경제도 자연스레 발전하고 있다. 특히 지난 선거에서 승리한 메르켈 총리가 당선후 가장 먼저 야당 지도부와 만나 장시간 향후 정책운용 방향에 대해 협의한 사례는 길이길이 참고할 만하다.     정치적 안정과 경제의 상관관계는 매우 높아 정치적 안정이 이뤄진 나라들의 경제는 세계적 위기상황 속에서도 비교적 탄탄하다. 일례로 중국은 국가경영을 책임지면 12년 정도를 계속한다. 5년 임기 두번에 2년전 총리를 지명해 세계를 돌며 공부를 한다. 따라서 상당기간 정책의 연속성을 유지 할 수 있다. 반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정치적 불안전성과 관계가 깊다. 일본은 지난 20년 동안 정권이 16번이나 바뀐다. 유럽의 경우 이태리도 비슷해 20년동안 14번이나 정권이 바뀌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책의 일관성은 공염불에 불과하며, 경제의 안정적인 발전을 바란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반면 독일은 지난 20년동안 정권이 2번 바뀌고 지금 12년째 유지되고 있으며,  야당과 여당의 소통을 통해 정책의 일관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결국 정치적 안정성에서 정책의 일관성과 질서가 나오며, 이는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과 연결된다. 우리도 민주항쟁 이후의 기니긴 갈등의 후유증에서 벗어나 이제는 정치가 정상 궤도로 가야한다. 그래야 국가경영의 안정성이 회복되고 지지부진한 경제 또한 한숨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