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계를 대표하는 여러분들을 모시고 말씀드릴 기회를 주신데 대해 우선 감사드린다. 학교에만 있던 사람이 졸지에 여의도 정치판에 끼어들게 되어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듯이 나름대로 소임을 수행하려 노력하고 있다. 오늘의 경우도 참석하기까지 걱정이 많았지만 기왕에 주신 기회이니 최근 어려움이 커지고 있는 한국경제의 현재와 장래에 대해 간략히 말씀드리겠다.
  우리경제가 어렵다는 이야기와 관련해서는 주로 양극화, 실업, 비정규직, 가계부채, 재정적자. 복지제원 부족 등이 주요 문제점들로 등장하게 되는데 문제들의 원인을 분석해 보면 그 뿌리는 저성장이다. 경제의 저성장 기조가 장기화하다보니 이같은 문제들이 발생한 것이고, 결국은 이들 문제들은 우리경제의 성장률을 높여야 해소 될 수 있다. 하지만 성장률 저하에 따른 우리 경제의 침제는 이미 난치병, 그것도 자각 증상이 없는 난치병 수준으로 이대로 간다면 수년 내 1990년대 일본과 같은 장기침체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지난 고도성장기 우리경제는 8% 대 이상의 잠재성장률을 지속해 왔지만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했으며, 특히 2000년대 이후 하락 속도가 가속화 하면서 성장 바탕이 서서히 시들어 가고 있다. 항간에는 이같은 경기침체의 원인을 정권의 정책 수행 능력에서 찾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으로 경제규모가 성장함에 따라 성장률이 점차 장기 저하 추세를 보일 수밖에 없는 경제 자체의 문제다. 다수 선발국에서 보았듯이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잠재성장률이 점차 떨어지고 결국에는 호황과 불황의 경계선인 0%에 수렴하는 경향을 보인다. 90년대 이후 일본이 보였던 비슷한 현상을 우리경제도 머지않아 경험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세계경제 어려움 우리경제에 그대로 반영
  우리경제를 싸고 있는 세계경제의 흐름도 좋지 않다. 세계경제는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전반적인 저성장과 국제무역의 침체로 장기침제의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해외에서 발생된 대외적인 경제악제도 상존하고 있다. 특히 중국 위안화 평가절하와 중국 경제의 저성장, 일본 엔저의 지속, 유로존의 혼란 반복, 미국의 금리인상과 신흥국의 경제위기, 중동사태의 악화 등 대형 악제들이 꼬리를 물고 있다. 이같은 세계경제의 흐름은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경제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세계경제 흐름과 한국경제를 비교해 보면 세계경제의 성장률은 한국의 GDP 성장률과 비슷하게 나타난다. 이는 세계 경제가 어려워지면 우리경제 또한 비슷한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실제 세계경제의 어려운 상황은 우리경제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그동안 우리경제는 주력산업의 포트폴리오 위험분산 효과로 세계경제의 위기 속에서도 나름 선전을 이어왔다. 하지만 최근 이런 현상이 사라지고 5대 주력산업이 동시에 실적악화를 보이는 등 어려움에 처해 있다. 물론 5대 주력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는 각 산업별로 다른 원인과 배경이 있다. 철강과 석유는 공급과잉, 전자는 국제경쟁의 심화, 조선은 수요감소, 자동차는 시장점유율 정체라는 각각 상이한 이유로 실적이 좋지 않다. 하지만 이들 5대 주력산업에서 동시에 어려움이 발생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들 산업의 실적악화에는 중국의 저성장과 일본 엔화의 약세라는 공통의 배경이 작용하고 있으며, 우리 산업의 국제경쟁력 약화라는 근본적 원인이 도사리고 있다. 따라서 그동안 우리경제가 누려왔던 호, 불황 산업의 포트폴리오 효과에 따른 위험분산 효과는 이제 그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

경쟁력 추락... 5대 주력산업 동시 실적악화 

   더욱이 세계경제는 앞날을 기약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이미 7% 이하로 추락했다. 중국 정부도 최초로 이런 사실을 인정하고 있으며, 중국 정부의 관리능력도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은 일본과 유럽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경우 세계경제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고려해 금리인상을 일단 미루고 있지만 미국 FRB는 미국을 위한 조직이지 세계경제를 위한 조직이 아니다. 따라서 결국 자국의 이해에 따라 금리인상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여기에다 중동을 비롯한 지정학적인 악제까지 겹치고 있어 이런 상황들이 그렇지 않아도 취약한 한국경제에 치명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경제를 지켜내려면 어떤 대안이 가능할 것인가? 한국경제가  이미 활력을 잃고 시들어 가는 상황이라 내부적 상황에 비해 외부적 충격이 더욱 문제인 만큼 이런 상황을 차단할 방파제 쌓기가 매우 중요하다. 최우선 과제는 달러, 즉 수출경쟁력 유지와 이를 통한 국제수지 흑자의 유지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내수 활성화를 통해 성장잠재력을 높이고 이를 통해 대외의존도를 낮춰야 한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우리경제가 당면하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점들이 바로 저성장에서 연유하는 만큼 내수 활성화를 통한 성장 잠재력 확보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아울러 정부의 재정건전성을 유지해야 한다. 우리경제의 경우 최후의 보루는 재정건전성이며, 우리가 국제신용도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도 상대적으로 높은 재정건전성 대문이다. 제정건전상과 관련해서는 복지제도가 문제로, 지금의 수준을 유지만 해도 수년후 국가부체가 GDP의 80% 수준을 돌파하게 되는 만큼  최대한 잘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3가지 방파제 모두가 만만치 않은 과제들이다. 우선 문제가 되는 성장잠재력을 높이려면 자본이 많고, 경제활동 참가율이 높아야 하며, 총요소 생산성이 높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경제의 경우 이들 3가지 모두에서 문제가 생겨 잠재성장률이 하락하고 있다. 따라서 우선 자본 측면에서 물적 자원과 우수한 인제자본을 확충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개혁을 통한 사람에 대한 투자효율화와 투자환경 및 기업환경 개선을 통한 설비투자의 활성화 시키는 것이 관건이다. 경제활동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일할 의사가 있는 사람들의 비율을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남의 돈으로 살거나 벌어놓은 돈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비중을 낮춰야 한다. 또한 여성인력과 노령인력의 경제활동 촉진 등 다양한 고용의 형태가 가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총요소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술개발과 혁신을 촉진하는 기업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생산적 활동에 대한 유인이 강화되어야 하며, 경제전반에 개방과 경쟁이 촉진되어야 한다. 아울러 좀비기업을 조기에 청산하는 등 산업주조조정이 촉진되어야 한다.

정치권과 우리 모두가 ‘징비록’을 생각해 볼 때   결국 우리경제가 재도약하기 위해 앞서 언급한 조건들은 특별할 것이 없는 상식적인 사항들이로,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들이며 처방도 이미 나와 있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바로 우리경제가 풀어야할 근본적인 문제다. 사실 1997년의 외환위기는 졸지에 당한 위기가 아니었다. 이미 이런 상황을 감지하고 1996년 금융개혁과 노동개혁 입법 등 자구노력이 있었지만 정권교체기 정치적 실패로 인해 개혁이 좌절되고 위기를 맞았다. 1996년 다수의 위기에 대한 경고가 있었고 금융개혁, 노동개혁 등이 진행됐지만 이해집단들의 반발로 중단되거나 진전이 없었으며, 이미 정권말기를 맞아 무력화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어렵게 여야의 합의로 국회를 통과됐던 노동개혁법 또한 1997년 초 정권이 교체되면서 없던 것으로 되고 말았다. 반면 이런 위기대응기제들의 발동으로 2008년 리먼사태에 따른 경제위기는 산업화국가 가운데 성장을 지속한 몇 나라에 속할 정도로 잘 극복했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의 고통이 2008년 세계적인 경제 위기를 무사히 넘기는 ‘감춰진 축복’이었고, 2008년의 상대적 선방이 지금 우리사회의 긴장 이완의 배경이라면 이는 ‘감춰진 저주’가 될 수도 있다. 지금은 긴장을 늦출 때가 아니며, 지난 교훈에서 보듯이 정치권의 책임이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하다. 최근 복지를 늘리고 법인세율을 올리라는 등 곳곳에서 긴장이 이완되고 있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위기의 전조가 될 수도 있다. 여기에다 내년에 총선이 진행되는 등 정치일정도 불안하다. 일례로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중 새 대통령이 취임하게 된다. 계획된 일정대로라면 평창 동계 올림픽 개회식은 박근혜 대통령이, 폐회식은 새로 선출된 대통령이 참석해야할 상황이다. 이런 정치적 변혁기에 만에 하나 경제에 돌발상황이 발생할 경우 정부의 대응능력이 제대로 발휘되기 어렵다. 진부한 표현 같지만 정치권과 우리 모두가 ‘징비록’을 생각해 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