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계를 대표하는 한국시장경제포럼 회원 여러분을 모시고 최우선 현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노동개혁 전반에 대해 말씀드릴 기회를 주신 것에 우선 감사드린다. 귀한 기회인만큼 많은 이야기를 드리고 싶지만 시간이 제약되어 있어 우리 노동시장이 안고 있는 문제점과 청년일자리 창출을 중심으로 말씀드리겠다. 노동시장의 현실과 관련해 먼저 말씀드릴 것은 바로 비약적인 기술발전에 따라 일자리가 빠르게 줄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피부로 느낄 수 있듯이 성큼 다가온 인공지능시대는 인력시장 전반에 급속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일례로 인공지능을 이용한 IBM 왓슨의 암진단은 82.6%의 정확도를 보여 전문의 수준(정확도 56~80%)을 능가하고 있으며, 미국의 경우 금융투자부분에서 인공지능 ‘로보 어드바이저’를 통한 투자자산의 규모가 갈수록 늘고 있다. 지난 3월 한국언론진흥재단 조사에서는 국민 4명중 3명이 30년후 일자리 절반을 로봇이 대체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이런 현실을 감안할 때 미래 노동시장의 방향은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단적인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3차 세계대전은 양질의 일자리를 놓고 벌이는  일자리 전쟁이 될 것(짐 클리프톤 갤럽회장)이란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이미 3차 산업혁명으로 관리직과 중간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으며, 앞으로 진행될 4차 산업혁명은 전문직 일자리까지 감소할 것을 예고하고 있다. 올 2월 진행된 다보스 포럼에서는 5년내 일자리 710만개가 소멸하는 반면 새로 생성되는 일자리는 200만개에 불과할 것이란 예측이 나왔으며, 옥스퍼드대학의 칼프레이 & 마이클 오스본 교수는 2013년 ‘고용의 미래’란 저서에서 20년내 미국일자리의 47%가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이러한 노동시장의 대변화가 주는 정책적 시사점과 그 대응방안은 무엇일까? 우선 노동시장을 둘러싼 환경의 예상치 못한 빠른 변화로 지난 시절 작성된 일자리 수급전망은 이미 그 의미를 상실했다. 지난 2006년 인력수급 전망에서 2015년 한국은 상당한 청년 구인난을 겪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올 4월 현재 청년실업이 10.9%에 이럴 정도로 정반대상황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일자리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 무엇보다 적응력 높은 탄력적 노동시장으로 변화해야 한다. 물론 탄력적 노동시장이란 새로운 변화는 도입과정에서 상당한 저항이 예상된다. 하지만 다윈이 진화론에서 이야기했듯이 변화하는 환경에서 결국 생존해 남는 것은 가장 힘이 센 종(The strongest)이 아니라 변화에 빠르게 적응한(The fittest) 종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이와 함께 변화 도입과정에서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방안도 함께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빠른 변화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일부 계층의 부적응을 고려한 안전망 강화도 함께 추진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괜찮은 일자리 진입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
  그렇다면 우리 노동시장의 현실은 어떠한가? 우리 노동시장의 현실과 관련해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저성장기조에 따른 낮은 고용률, 연공급 등 불공정한 임금체계와 장시간 근로, 능력과 성과보다는 기업규모와 고용형태, 노조 유무에 따라 결정되는 일자리 질, 불합리한 고용 및 노사관계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우선 저상장 기조에 따른 일자리 감소 문제는 낮은 고용률과 고용탄성치를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실제 우리는 OECD국가들에 비해 고용률도 낮지만 고용탄성치 또한 0.36수준으로 선진국(0.5~0.75)에 미달된다. 연공급 위주의 임금체계와 장시간 근로는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막고 있으며, 능력이나 성과보다는 기업규모, 고용형태, 노조 유무가 일자리를 결정하면서 상하위 10%의 임금격차가 4.7배에 달하는 현실도 개선되어야 한다. 이외 채용, 해고 등에 있어 합리적인 원칙이 결여되면서 불합리한 고용 및 노사관계가 지속되고 있으며, 노동시장의 경직성은 달라지지 않고 있다. 그 결과 미래세대인 청년의 일자리 어려움은 갈수록 가중되고 있다. 여기에다 최근 경제상황에 따른 산업계 구조조정은 노동시장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복병으로 부상하고 있다.
  청년 일자리 문제는 정말 심각하다. 최근 한 대학을 찾아 학생들의 대화를 가졌는데 일자리 정보와 정부의 청년지원 대책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한 여학생의 질문은 지금도 마음을 아프게 한다. “방학 때는 물론 학기 중에도 하루 두 시간 정도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아르바이트를 쉬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나요?” 어쩌다 우리 아들·딸들이 아르바이트 중에 실업급여를 받고 싶어 하는 상황까지 오게 됐을까. 한국은행에 의뢰해 우리 노동시장의 ‘괜찮은 일자리(decent job)’ 수급상황을 학력 기준으로 분석해봤다. 1997년 외환위기 직전에는 업계 평균임금 이상의 괜찮은 일자리가 530만개, 전문대졸 이상으로 노동시장에서 일하고 있는 근로자나 졸업 예정자는 495만명 정도로 어지간한 청년들은 쉽게 괜찮은 일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이후 15년 동안 괜찮은 일자리는 더디게 늘어 2012년 말 602만개에 그쳤다. 이에 비해 전문대졸 이상은 1,050만명에 이른다. 결국 440만여개의 일자리가 부족해졌고 청년들이 괜찮은 일자리에 진입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연공급제 근로자들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아
   물론 정부는 이런 현실을 고려해 다양한 청년 일자리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정부 대책들이 청년 취업에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취업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청년 일자리는 기업과 민간부문의 투자에 따라 창출되기 때문에 투자와 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력이 높아져야 청년 일자리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기회 있을 때마다 경제 5단체, 30대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에게 기업의 가장 큰 가치와 지향점을 청년 일자리에 두는 경영을 해달라고 호소하는 이유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한국만이 안고 있는 노동시장의 불합리한 관행과 제도가 개선돼야 실질적인 고용탄성치(경제 성장에 따른 고용변동의 크기)가 올라갈 것이다. 더불어 연공서열식 임금을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로 고치고, 통상임금·법정 근로시간 및 근로계약 관계를 둘러싼 갈등 소지를 최소화해야 한다. 상위 10%에 해당하는 대기업·공기업 노조가 막강한 교섭력을 앞세워 기업의 성과를 독점할 것이 아니라 협력업체로 흘러가게 해야 한다.
   청년 일자리는 취업에 대한 정부지원 대책과 노동개혁이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가 함께 굴러가야 온전히 작동할 수 있다. 지난해 노·사·정 대타협을 할 때 청년취업애로계층이 110만여명이었는데 6개월 새 121만명으로 증가했다. 노동개혁 등 특단의 노력이 성공하지 않으면 3~4년 뒤 40만명의 청년취업애로계층이 더 생긴다. 과연 우리 사회가 감당해 낼 수 있을까? 두려움이 앞선다. 노사단체가 기득권을 지키고자 노동개혁을 반대하고 정치권이 노사단체의 반대 때문에 노동개혁 입법을 주저하여 적기에 처리하지 못하면 더 이상 희망이 없다. 2010년 일부 행정업무의 외주화를 놓고 노사 간 갈등을 빚던 모 병원장에게 청년들을 위해 직접 고용을 유지할 것을 권고한 적이 있다. 당시 병원장은 “직접 고용하면 호봉제 때문에 4~5년 뒤 경쟁 병원에 뒤처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병원은 결국 해당 업무에 대해 도급을 줬다. 지난해 만난 한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는 55세가 넘은 현장 근로자들로부터 “‘희망퇴직할 테니 대신 자녀들을 취업시켜 달라’는 고용 세습 제의를 받았는데 인건비를 생각하면 받아들이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한국의 지배적인 임금체계인 연공급제(호봉급)가 근로자들에게 유리하지 않고 청년 직접 채용을 어렵게 한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단적인 사례다.
  과도한 임금격차도 상위 기득권의양보를 통해 해소되어야 한다. 우리 노동시장의 임금 격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다. 한국노동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1980년대 초반까지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가 5% 안팎으로 그리 크지 않았다. 30여년이 지난 지금 중소기업 임금은 대기업의 절반 수준이다. 1987년 이후 대기업 노동조합 중심의 임금 인상 투쟁,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하도급·협력업체를 활용한 수직 계열화 등이 이유로 꼽힌다. 올해부터 ‘정년 60세’가 의무화되면서 청년고용 사정은 더욱 악화되고 있어 임금체계 개편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연공급의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리는 공공기업과 금융회사, 대기업 정규직이 솔선수범해야 한다.

 노·사·정과 정치권이 함께 웃을 미래를 소망
  노동행정에 종사해 온 지난 35년을 돌이켜 보면 열심히 했다는 자부심도 있지만 반성해야 할 대목이 적지 않다. 청년 취업난을 악화시킨 세 가지 요인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점이 그렇다. 1987년 울산에서 지역노사관계담당 사무관으로 근무했다. 노동조합의 거리 집회를 현장에서 지켜보면서 노사 상생체제가 구축되기까지는 10여년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1997년 외환위기 때는 기관장으로 울산에서 근무했다. 그 이후에도 노사관계 분야에 주로 몸담으면서 노사관계의 적나라한 모습을 누구보다 가까이, 그리고 오랫동안 볼 수 있었다.
  우리 노사관계는 아직 성숙하지 못했다. 특히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은 여전히 자기 이익 중심의 강성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기업들은 쉬운 길을 택해 왔다. 소속 근로자를 최소화하고 급격히 다단계 하도급화를 선택했다. 이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화와 고용구조 악화, 현격한 임금격차를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 됐으며, 청년들이 갈 만한 일자리를 부족하게 한 결과를 가져왔다. 따라서 ‘좀 더 파고들어서’ 애절하게 미래 세대의 관점에서 접근했어야 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치권의 거센 압력을 받더라도, 여론의 지탄에 직면하더라도 근로자와 기업의 상생, 대기업 근로자와 중소기업·비정규직 근로자의 상생, 현재 일하는 근로자와 미래 근로자인 우리 아들딸들의 상생이 이뤄지는 방향으로 보다 일관성 있게 기본과 원칙이 정립되게 했어야 했다.
  청년일자리와 연관된 장기 인력수급 전망이 크게 틀린 점도 반성한다. 2006년 고용정책을 총괄하는 국장(고용정책심의관)으로 일할 때 향후 10년간의 인력수급 전망을 했다. 미래 고용정책의 기초통계로 사용하는 인력수급 전망으로, 당시엔 2015년 이후에는 청년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지금 청년고용 상황은 그때보다 훨씬 안 좋아졌다. 뒤돌아보니 저성장 기조와 기술발전 등 국제적 추세와 더불어 우리나라만이 안고 있는 노동시장의 잘못된 관행, 불확실성, 불공정성 탓에 괜찮은 일자리 증가가 더디게 된 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2008년 근로기준국장으로 재직할 때 노동시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미래 노동시장의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진보·보수를 망라해 ‘근로기준 선진화 위원회’를 운영했다. 밤을 새워 토론하면서 임금, 근로시간, 근로계약 등 주요 쟁점별 검토를 거쳐 34개의 개선방안을 아들딸들의 일자리 증대라는 대의를 이룬다는 사명감으로 표결에 의해 완성했다. 그러나 노사단체와 정치권의 반대로 결국 입법을 못했다. 그때 어떤 역경에도 불구하고 입법을 해냈더라면 통상임금 파동은 피했을 것이다. 눈앞에 다가오고 있는 법정근로시간 한도를 둘러싼 갈등의 큰 파고도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바보 같은 사람은 같은 유형의 후회와 반성을 되풀이하는 자일 것이다. 10년 뒤 우리 후배들이 또다시 참담한 심경으로 후회하면서 반성문을 쓰게 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4차 산업혁명기가 우리 눈앞에 있다. 노동시장에 미칠 영향은 엄청날 것이다. 지금 부모세대는 정부 관계자든, 현장의 노사 대표든, 정치권 인사든 상관없이 우리 아들딸 세대의 일자리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주저 없이 결정하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 그리고 10년 후 기쁨의 웃음을 노·사·정과 정치권이 함께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