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 한명 바뀌니...’ 민병문 / 헤럴드경제신문 주필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말에는 부정적인 뜻이 담겨져 있다. 원래 큰 그릇이 아닌데 근사한 자리에 앉혀놓으니까 그럭저럭 빛이 난다는 의미다. 당사자는 덕을 본 셈이지만 그런 사례가 많은 나라나 기업은 결국 망하고 말 것이다. 반면 진짜 실력자는 하찮은 자리라도 곧잘 빛을 내게 한다. 사람이 자리를 자리답게 만드는 것이다. 인사가 곧 만사라는 말은 이런 때 쓰인다. 연의 삼국지에서 촉나라 맹장 장비는 제갈공명에 버금가는 유능한 인물 봉추를 의형제 맏형인 유비로부터 천거받고 외모가 신통치 않자 한낱 시골 현감에 임명했다.

민병문 / 헤럴드경제신문 주필

그가 매일 술로 지새운다는 소식에 잡아들인 뒤 일 대신 향연만 즐기는 사유를 묻자 봉추가 태연히 대답했단다. 자신이 그동안 일을 안한 것은 사실이나 지금 밀린 일을 가져오면 즉각 처리하겠노라 해서 정말 시켜본 결과 일사천리였다는 것이다.
이 경우는 너무 큰 인물을 너무 작은 일에 앉혀 빚어진 코메디다. 자리에 모자라는 인물보다는 위기 때 일처리를 잘하겠지만 역시 잘된 인사는 아니다. 인력을 낭비한 때문이다. 더욱이 무식한 장비로부터 무리한 지시나 계속 받으면 일을 잘하기도 어렵다. 적재적소 인사는 그만큼 중요하다.

이명박정부 인사는 그런 점에서 매우 안타깝다. 개각 때마다 헛손질이 많고 하찮은 자리마저 자기 사람심기에 정신없다는 소리를 듣기 때문이다. 부동산 투기, 탈세, 논문 표절, 건강보험료 미납, 위장 전 출입, 병역의무 기피 등 장관 후보자들의 면면에서 성한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다. 국회 청문회에서 모진 수난을 겪다 낙마한 사람들이나 임명권자인 대통령이나 오십보백보라는 생각이다. 개인적인 망신 다 당하고 정권 지지도마저 끝없이 추락시킨다. 1차적 책임은 임명권자의 속 좁은 도량 또는 정치 역량 부족에 있다.

MB의 경우 집권초부터 ‘고 소 영’ 인사로 시달렸다. 세월가면 나아질까 했으나 3년을 지나는 시점에서는 오히려 회전문, 측근, 형님 인사 등으로 더 어수선해지고 있다. 앞의 돌 빼서 뒷돌 괴는 식 인사를 국민이 모를 리 없다. 정권 바뀌었는데 당연한 것 아니냐고 볼멘 소리하면 도리 없지만 진실로 민주정치 잘하는 국가나 통큰 정치인은 싫어도 적까지 포용하는 인사로 난국을 돌파한다.

오바마 미국대통령이 경쟁자였던 힐러리 클린턴을 국무장관으로 기용한 것,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윈스톤 처질 영국 전수상이 전임자인 체임벌린을 국회의장과 보수당대표로 천거하고 그의 심복이었던 외무장관을 워싱톤대사로 발탁했던 것은 국정을 원활히 하기 위한 포석이다. 왜 이명박대통령은 그 많은 야당 인사들 가운데 관 몇 자리 할당할 생각을 하지 못할까. 같은 당 친박계 인사인 유정복농수산부장관 하나 발탁하는데도 참 고민 많이 한 흔적이 역력했다. 인사 실패는 아무리 다른 정책을 잘해봤자 좋은 소리 못 듣는다.

이명박정부 지지도가 하락 일변도에서 주춤한 것은 소말리아 해적의 덕이 크다. 이들에게 인질로 잡혔던 삼미드림호의 해적들을 공격, 구출해낸 때문이다.

이게 얼마만의 희소식인가. 우리 구축함 최영호에 탑승했던 용감한 해군 UDT 대원들이 ‘아덴만의 여명’작전을 전개, 해적 8명을 사살하고 5명을 생포하면서 인질들을 무사히 구출하자 대한민국이 되살아난 것이다. 해외 전투에서의 적 사살은 베트남전 이후 처음이란다. 우리 국군의 야성을 30여년만에 다시 보는 느낌에 대한민국 국민은 찌르르 울림을 받았음에 틀림없다.

우리는 2010년, 경인년 호랑이 해에 호랑이는커녕 빈사상태의 북한에게 두번씩이나 물렸다. 초봄에는 천안함이 두 동강 났고 늦가을에는 연평도가 무자비한 포격을 맞았다. 그런데도 손 한번 쓰지 못했다. 확전에 벌 벌 떠는 소심함의 극치를 보였다. 어떤 경우에도 전쟁은 안된다는 원칙에만 매달려 정당한 방위조차 소홀히 한 자괴감에 빠져야 했다. 연평도가 불타고 있는 마당에 국방장관이 국회의원들 궁금증이나 풀어주자고 의사당에서 답변에 매달려있는 한심한 모습에 분노했다.

나라 사기가 극도로 땅에 떨어졌다. 북한의 적반하장격 핵과 전쟁 위협에 대한민국 내부 분렬 주장만 가득했다. 달라는 대로 다 주고 전쟁을 피하자는 소리만 커져가는 판국이었다.

이런 때 ‘아덴만의 여명’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이것은 인사 실패를 거듭하며 인기 하락의 이명박정부을 살렸지만 그런 정권 차원에서 볼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국격을 되찾은 까닭이다. 한국을 세계만방에 알리고 북한에 대해서도 우리가 참고 있을 뿐 무서워하지도, 실력이 없지도 않다는 확실한 증거를 보인 것이다.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입각한 김관진국방장관이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 간담회 형식의 보고를 마치자 원유철위원장은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 회복”을, 노무현정권에서 국방장관을 지낸 김장수의원은 "장관 한명 바뀌니 일이 잘 풀린다“라고 덕담했다.

무섭게 각을 세우던 손학규 민주당 대표까지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대통령이 이 작전을 직접 지휘했다. 훌륭한 작전 능력에 찬사를 보낸다”고 극찬했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 대표는 “우리 군의 해적 소탕에 박수를 보낸다”고 트위터에 올렸다. 찬사 뒤에 곧 바로 모든 언론이 아덴만 기사로 꽉 덮어 도대체 우리나라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토로했지만 일단 국가적 경사는 경사로 축하하고 난 뒤였다. 야전군 출신 국방장관의 취임이 가져온 일대 변화였다. 한명의 장관 힘이 이렇게 일파만파를 가져온 것이다. 나약하고 무지한 장관이 대통령 말에 무조건 예스하는 것과 의식 있는 장관이 골라서 예스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대통령이 만일 작전 개시를 두고 고심할 때 이를 긍정적으로 조언하지 않고 부정적으로 입을 연다면 사태는 180도 달라진다. 설혹 고심 끝에 대통령이 작전 개시 결심을 했을 경우도 이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조언과 그로인해 발생할 부작용에 초점을 맞춰 말하는 경우는 다르다. 대통령도 사람이다. 때로는 외롭다. 결과에 무섭기도 할 것이다.

내심 자신이 없어할 때 옆의 장관이 힘을 보태주는 것, 그게 바로 역량 있는 한 장관의 힘인 것이다. 개각에서 측근, 친한 사람 위주 회전문 인사를 하지 말아야 할 가장 큰 이유 아니겠는가. 원래 국방장관 후임도 전해지기는 MB가 좋아하는 측근이었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김장관이 낙점되었지만 그를 어떻게 잘 효과적으로 실력발휘하게 할지는 온전히 임명권자 책임이다. 한 장관이 바뀌면 역사가 바뀔 수 있다는 점에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