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과이익 공유제의 허구’ 이규민 / 한국시장경제포럼 회장   정운찬 전 총리가 촉발한 초과이익 공유제 논란을 보다가 오래전 어렵게 구해 보았던 노무현 대통령시절의 비공개 동영상 하나가 생각났다. 노 전 대통령이 연례행사처럼 청와대 회의실로 재벌그룹 회장들을 불러 대기업 중소기업 상생보고회를 주재하는 행사장면이었다. 이런 회의는 대개 대통령이 먼저 중소기업을 잘 도우라는 틀에 박힌 '당부의 말씀'을 하고 이어 재벌회장들이 돌아가며 대통령의 경제정책에 감사드리는 '용비어천가'를 지정곡으로 부른 후 "우리 회사는 중소기업과 이렇게 잘 협조할 것"이라는 다짐을 한마디씩 내놓는 식의 각본대로 진행되게 마련이다.

이규민/한국시장경제포럼 회장

 그런데 대통령 '말씀'에 이어 첫 번째 발언자로 마이크를 잡은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그 틀에 박힌 시나리오를 거부했다. 주머니에서 핸드폰 하나를 꺼내 책상위에 올려놓더니 대통령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중소기업이 이거 케이스 하나 반듯하게 만들지 못하면 기계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우리가 핸드폰 수출을 못합니다. 대통령이 이런 회의 안 하셔도 대기업들은 저희들이 협력업체에 기술자 보내고 돈 대주면서 물건 제대로 만들느라 바쁩니다".

대기업이 아쉬워서라도 중소기업과 잘 협력하고 있으니까 정부는 이런 일에 쓸데없이 간섭하지 말고 시간 좀 뺐지 말라는 어조였다. 그리고 입을 다물었으니 분위기가 어떻게 됐겠는가.
 

그러나 나는 삼성을 포함한 한국의 모든 대기업들이 이 회장 말처럼 하청업체들과 그렇게 바람직한 협조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서 있는 발판의 높이가 다른 대기업과 중소 협력업체는 애초부터 갑과 을의 종속관계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요즘처럼 기술개발이 초음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세상에서는 필사적인 가격경쟁의 쓰나미를 몸으로 가장 먼저 받아내야 하는 방파제가 중소 납품업체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대기업보다 상대적으로 더 힘이 센 정부가 손을 내밀어 주지 않는다면 중소기업은 그야말로 생존 자체가 사치스러운 일일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문제를 정부가 완전히 시장주의에만 맡겨 놓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그러나 사정이 그렇다 하더라도 정운찬 전 총리의 초과이익 공유제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동반성장의 묘약은 될 수 없다. 본인은 틈만 나면 자신이 경제학자임을 강조하면서 비판의견을 꾸짖는데 그것은 대개 논리가 궁할 때 "너 몇 살이야"하는 식으로 본질과 관계없는 주제를 들먹여 상대를 몰아붙이려는 태도일 뿐이다.

그는 "이익은 노사 간의 성과배분 문제이지 기업 간의 일이 아니다"는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의 말에도 논리적으로 잘못을 지적하기보다 "이 정부에 동반성장의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비본질적 비난을 퍼부었다.

'이 정부'는 정 전 총리가 몸담았던 바로 그 정부다.
 경제학자가 기업 간 문제에 가장 탁월한 지혜를 갖고 있다고 그가 생각한다면 그건 대단한 착각이다. '일반적인 얘기'지만, 경제학자라도 과거 책 한 권 써서 유명해지고 나서 공부는 않고 허구한 날 카페에서 동료교수들 불러 술 퍼마시면서 보직선거운동이나 한 사람이라면 정체된 그의 지식은 후학들에게 공격받기 좋을 만큼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또다시 '일반적인 얘기'지만 그런 정치교수들이 대개 정부 고위직에 등용도 잘되고 관을 떠난 후에는 행정부 부하였던 사람들로부터 존경받지 못한다는 공통점도 있다.

 정 전 총리가 말하는 초과이익 공유제의 가장 큰 문제는 초과이익의 개념 자체에 있다. 그는 초과이익을 연초 기업이 세운 이익목표보다 초과달성한 것으로 정의했다.

그렇다면 그렇게 순순히 초과이익이 발생하도록 놓아둘 순진하고 무능한 기업이 세상에 얼마나 될 지부터 그는 생각했어야 했다. '탐욕은 시장주의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인간의 본성'이라는 말은 세계적으로, 역사적으로 정 전총리보다 훨씬 더 저명한 경제학자들이 기업의 탐욕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다.

이익에 관한 한 기업이 얼마나 영악스럽고 탐욕스러운 존재들인데 그들이 하청업체와 나눠먹도록 목표이익을 넉넉하게 낮춰 잡을 거라고 생각하는 이런 분은 (경제학 공부는 많이 하셨다니까 이제는) 세상공부를 좀 하셔야 할 것 같다.

정 전 총리는 "근로자들에게도 초과이익을 나눠주면서 협력업체에는 왜 못 주느냐"고 했는데 이 또한 그가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왜 바로 이웃의 회계학은 등한시했는지 안타깝게 만드는 발언이다.
노사 간 합의에 의해 성과보상을 하는 것은 인건비로 분류되고 정상적으로 관리되는 지출행위에 해당하지만 그 자금을 기업 밖으로 이전하는 데는 법적으로 정해진 명확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 불우이웃돕기 식으로 하청업체에 돈을 나눠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의 주장대로라면 소비자인 전 국민에게도, 더 넓게는 수출로 돈을 벌게 해 준 세계 방방곡곡 소비자들에게도 초과이익을 나눠줘야 한다. 기업이 회사의 이익을 이렇게 외부에 뿌릴 때 그것을 용납할 주주가 있을까. 주주의 권익과 회사의 건전한 발전을 유도하기 위해 현행법은 그래서 여러모로 이 따위 짓을 막고 있다.

정 전 총리는 논란이 일자 "기업이 자율적으로 하되 기술협력기금을 마련하든지 고용안전기금을 마련하든지 하는 방법으로 중소기업을 강하게 하자는 것"이라고 한발 물러난 듯한  말을 한 것으로 보도됐다. 자율적으로 하는 것이라 당사자인 대기업들이 반대할 경우 그만두는 것이 옳다. 자율운운 하면서 정부위원회의 장이 고집을 부리는 것은 흡사 강도가 칼을 들이대고 '자율적으로 돈을 내라'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기술협력기금이나 고용안정기금은 정 전 총리가 정부에 계실 때 기업들이 낸 세금으로 만들었어야 할 기금이지 기업이 '자율적으로' 만들 대상은 아니다.

 이런 문제보다 더 우리를 서글프게 하는 것은 일국의 총리를 지낸 분이 자신이 몸담고 있던 정부에 대해 던진 불만의 발언이다.

"정부가 위원회를 만들어 놓았지만 현재 예산도, 인력도 전혀 없는 상태인데 정부가 위원회에 무슨 일을 바라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탄식을 했다고 한다.

정말 그런 실정이라면 그것은 정부가 전직 총리한테 '적당히 이름만 걸어놓고 소일하시라'는 뜻인데 혹시 그가 눈치 없이 너무 과욕을 부리는 것은 아닌가. 그의 위상이 그런 정도라면 이 문제는 이미 물 건너 간 것일 테니 더 이상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을 것 같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그렇다면 이제 신경 쓰이는 것은 총리 지낸 분이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의 정부에 대해 이렇게 투정하는 모습을 집에서 크는 애들이 보고 부모한테 그렇게 대할까 그것이 걱정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