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난히 일본과 경쟁할 때만 되면 신통할 만큼 강해진다. 스포츠에서 산업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서 그랬다. 운동시합에서 우리 선수들은 일본팀만 만나면 으레 상상할 수 없는 초인적 힘을 쏟아내 이기는 경기를 많이 한다. 두 나라 스포츠의 객관적 수준만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일이, 그것도 어쩌다 한두 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한일전 때마다 자주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으니 참으로 신기할 뿐이다

이규민/한국시장경제포럼 회장

 산업에서도 그렇다. 전자 조선 철강 자동차처럼 기술경쟁이 치열한 첨단산업 분야에서 한국 업계 때문에 일본 업체들이 고전하고 있다.

국제시장에서 삼성과 LG전자는 이미 일본의 소니와 파나소닉을 경영난에 빠뜨릴 정도로 앞섰고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은 일본의 유수 업체들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조선소로 등극했다. 현대차가 미국시장에서 도요타를 추월하기 시작했다는 소식도 이제는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한국이 일본만 만나면 강해지는 이유는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일본과 대결하는 한국선수들은 늘 “일본만은 어떻게든 이겨야 한다”는 ‘범국민적 압박’을 받는다.

그로인해 긴장도가 높아진 우리 선수들은 36년의 식민 지배에 한풀이하듯 일본과 필사적으로 맞붙어 실력이상의 성과를 내는 것이다.

두 번째는 사뭇 긍정적인데, 많은 분야에서 우리가 따라하기 좋은 목표이자 타도의 대상인 선진국 일본이 바로 이웃에 있다는 점이다. 분발과 자극의 원인을 제공하는 모범생이 늘 곁에 있다는 것은 국가로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렇게 스포츠나 산업분야에서 국민들은 일본에 대해 잘하고 있는 데 이 나라 정치지도자들은 과연 어떻게 하고 있나. 지난 번 광복절을 전후해 정치인들이 경쟁적으로 벌였던 ‘독도 마케팅 애국 쇼’를 보면서 나는 솔직히 다시 일본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이런 저급한 대응들을 저들이 속으로 얼마나 비웃고 있을까 생각하니 우리의 허점을 들켰다는 생각에 수치심까지 들었다.

사람 나이 예순 여섯이면 웬만큼 사리판단을 할 수 있을 때인 데 66주년 광복절을 맞은 이 나라 정치의 모습은 정신적으로 그렇게 성숙해 보이지 않았다.

일본얘기만 나오면 갑자기 이성을 잃고 흥분하는 일부 우리 정치인들의 모습은 심하게 말하면 ‘철들자 노망난’사람들 같아서 고개를 가로젓게 만든다. 하필 광복의 달에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며 울릉도에 가겠다던 일본 국회의원들의 행태도 괘씸했지만 그렇다고 냅다 독도로 달려가 군복에 철모 쓰고 경비 서는 모습을 연출한 이 나라 어떤 장관의 모습은 텔레비전의 개그 콘서트를 연상시킨다. 총 들고 보초 서는 것은 그 장관보다 훨씬 더 생각 건전하고 몸 튼튼한 젊은이들이 할 일이다. 장관의 머리는 철모나 쓰라고 있는 게 아니라 국가를 위해 멀리보고 깊이 생각하여 절제된 판단을 내리는 지혜를 짜내라고 있는 것이다.

그 장관뿐 아니다. 일부 국회의원들은 ‘독도영토수호대책특별위원회’라는 꽤나 긴 이름의 특위를 만들어 그 회의를 독도에서 개최하겠다고 선전했는데 그들이 원한 것이 독도수호였는지 아니면 언론에 얼굴 나오는 것이었는지 국민은 다 안다.

다행히 날씨가 나빠 서울발 독도행 경찰 헬기가 뜨질 못했지만 여 야 지도부들 수십 명도 떼 지어 독도무대에 등장할 뻔 했다. 독도는 그런 유치한 방법으로 지켜질 섬이 아니다. 특위위원들은 독도 갈 시간에 국회도서관에서 한일 역사책 한 줄이라도 공부하는 것이 자신의 발전에 더 도움이 되고 여 야 지도부들도 기름 값 비쌀 때 국민세금으로 운영되는 헬기를 안타는 것이 국가이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 나라의 지도층이 대국민 반짝 흥행에 주인공으로나 등장하려는 수준으로 과연 쇠처럼 냉정하고 기계처럼 정교하게 미래를 준비하는 일본을 대적할 수 있을까. 대응전략을 짜내느라 고심하기보다 독도배경 사진이나 찍을 생각을 하는 정치인들에게 나라를 맡기고 있으니 정말 독도가 지켜질지 국민은 불안하기만 하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국민이 지도층을 걱정해야 하는 나라가 됐다. 독도갈등의 불안은 바로 우리 안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