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사회주의 혁명이 뻗어나가면서 이른바 좌파들은 진보라는 용어 사용 특권을 선물로 받았다. 그 뒤 이들이 진보 명분 뒤에 숨어 독재와 공포정치, 국가 재정을 흠집내다 결국 와해된 것은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와 더불어 불과 얼마전 일 아닌가.

아니 신생 독재 또는 파쇼정부는 일반적으로 과대 포장과 국민 현혹의 전문가들이다. 정치적 후퇴를 변화와 혁명, 혁신으로 둔갑시켜 진보라는 이름으로 역이용하는 것이다. 전두환 군사정권이 서둘러 80년대 초 컬러 TV방송을 시작하고 프로 스포츠와 88 서울올림픽 유치에 총력을 기울인 까닭도 일종의 파쇼 정권의 명분 찾기 선전술, 국민의 관심을 다른 데 돌리려는 포장술에 다름아니다.

확실히 좌파들이 선점한 ‘진보’라는 용어의 파괴력은 대단하다. 원래 맑스 레닌의 사회주체 변화 필연성을 따라잡자는 뜻의 좌파가 혁신의 대명사인 것처럼 진보 용어를 채택하자 좌파=진보같이 되었지만 꼴통 소리를 들어야 하는 우파 보수는 좌파 진영 이상의 대단한 혁신 노력을 해봐도 여전히 보수다.

현재 가치를 지키기만 하려는 완고한 고집불통일 뿐이다. 그만큼 좌파는 진보라는 용어 자체로 상당한 점수를 따고 들어간다. 특히 젊은이들, 그것도 신자유주의에 억눌려 만년 백수 또는 알바 신세를 면치 못하는 청년들에게는 매력적이다.

지금 중국 정부에 이유도 모른 체 장기간 억류돼있는 김영환씨만 해도 그렇다. 12 12사태로 정권을 줏은 전두환이 곧 미국을 방문, 인준받는 형식으로 권력 발판을 굳혀가는 상황을 보며 표면상 인간 중심 철학인, 당초 황장엽씨가 생각해낸 북한의 주체사상에 관심을 갖고 뭔가 현상 변화를 바라는 것은 젊은이로서 자연스런 일일 것이다. 좌 우파를 떠나 군사독재 타파를 위한 진보라는 용어에 흠뻑 빠졌을 게 분명하다.

그래서 80년대 중반 ‘강철 서신’을 써서 학생들을 자극하다가 마침내 잠입 방북, 김일성과 두차례 면담 끝에 92년 민족민주혁명당을 창당하기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다행히 그는 북한의 권위주의와 김일성 수령론, 수백만명의 아사등 북한 현실에 실망했다. 그는 97년 과감히 전향을 선언하고 말았다.

따지고 보면 동구 공산권 정권 몰락에서 이미 ‘좌파=진보’라는 용어는 사라져야 했다. 2차대전 후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던 동유럽사회주의국가들이 독재와 부패로 사라질 때 체제 변화를 추구하는 저항세력이 진보이고 기득권 사회당 공산당 집권측과 관료들이 보수인 것은 두말할 나위없다. 지금 중국과 북한이 남았지만 누가 진보이고 누가 보수인가. 중국 반체제 인사들을 현 집권층인 좌파에 반대한다고 보수로 볼 수 있는가.

김정은 3대 세습 체제로 가는 김일성왕조에서 일사불란한 수령 체제를 고수하려는 북한 기득권 세력이 과연 진보인가. 그들과 가까이 하는 친북, 종북의 남한 진보 세력을 진보라고 부를 수 있는가. 반면 북한 노동당에 입당하고 이들의 지시와 자금까지 받아 민혁당을 창당했던, 이른바 민족해방(NL)계 중심에 있다가 전향한 김영환은 우파 세력 속에 들어왔으니 보수인가.

계간지 ‘시대정신’ 편집회의에서 만나본 그는 말수도 적고 조용했다. 하지만 내면의 결단력과 추진력이 북한 민주화 운동이 밑불을 견고히 한 것은 분명하다. 중국이 국제법을 무시한 채 김씨 구속과 접견 금지, 국가위해죄 적용등 강공을 구사하는 게 이를 시사한다. 물론 북한 반발을 의식해서다. 한국의 좌파 또는 이름만 진보인 정당들에게 김씨는 명백한 진보 아이콘이다. 그는 80년대 변화의 물결 한가운데 있다가 진보 정당인 민혁당을 자진 해산했다. 자신이 추진했던 변화가 잘못되었다고 판단되자 다시 변화를 시도한 것이다. 그게 바로 북한민주화 및 인권운동이고 탈북자 돕기 운동이다.

그런데 민혁당 해산 당시 이를 반대한 소수가 남아 북한과 연계 지하활동을 벌이다 4.11총선을 통해 국회 진출까지 하게 된 골수 후계들은 폭력과 막말로 80년대 주사파, 더 거슬러 올라가서는 60년대 통혁당 사건 때와 비슷한 주체사상을 버리지 않고 우리의 민주적 절차를 무시한다.

그들이야말로 꼴통 보수들이다. 왜 3대 세습, 인권 탄압등에 의견을 말하지 않는가의 질문에 우리 헌법이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때문에 말하지 않을 자유도 있다는 궤변을 되풀이 한다.우리 세금으로 우리 땅에서 세비를 받는등 먹고 산다면 국민들의 의문을 풀어줄 의무도 있지 않은가.

좌파 종북 세력이 진보를 자처하며 사회 불만 세력의 등 뒤에서 오히려 김씨 같은 진보와 변화의 달인들을 모독하는 시대다.

전향자의 고통은 겪어본 사람만 안다고 한다. 과거 동료들로부터 따돌림은 물론 가족, 친지관계등 복잡하다. 특히 자신과의 싸움은 더 하다. 길게는 30년,40년씩 장기수들이 끝내 전향하지 않고 옥사하거나 결국 북한행을 하게 되는 것은 전향했을 경우 자신이 그동안 싸워온 모든 것이 허상이 되기 때문이다.

살아온 나날이 허공중에 떠버리는 것은 죽음보다 무서울 수 있다. 그러니까 전향, 나아가 진보적 행보를 취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김영환씨와 함께 일하다 역시 전향한 홍진표씨의 경우 김대중 좌파 정권하에서 별 볼 일이 없게 되자 어머니가 “너는 왜 맨날 안되는 데만 따라 다니냐”고 했다는 기록이 매우 상징적이다.

더 이상 진보가 아닌 사람들을 진보로 불러서는 안된다. 그냥 좌파라고 하면 된다.
좀 모자라지만 사회주의 세력도 괜찮다.

진짜 진보는 주자가 대학에서 말했듯이 “날마다 새롭고 또한 더 새로워져야 한다”(日日新 又日新)그런 노력없이 50여년전 주사파에 젖어 아무 변화 노력없이 선동과 폭력으로 권력을 잡고 향유하려는 좌파를 진보라고 대접할 수 없다. 김영환, 홍진표씨등 진보적 전향자들을 대거 새누리당에 영입, 새 바람을 일으켜야 진짜 진보가 누구인지 세상이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