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답은 그의 저서와 생각에 있다. 영국, 미국등 서구 선진국들이 지금은 시장 자유체제와 글로벌리즘을 내세워 경제는 물론 정치까지 발전시킬 수 있다고 개발도상국들을 훈수하고 있지만 막상 그들이 산업발전을 추구하던 18세기, 19세기 무렵 초기에는 강력한 국가 보호체제로 유치산업을 일정 궤도에 올려놓았다는 것이다. 일단 최고 수준에 올라가자 자신들이 올라간 사닥다리를 걷어차 후발국 추격을 피하려고 자유시장 체제를 최고인양 호도한다는 설명이다.

이런 사실을 역사학파적 입장에서 실증한 게 그의 저서 내용이다.

올해는 유신체제 발효,40돌-그러니까 지난 72년 10월 17일에 박정희 당시 제3공화국 대통령은 돌연 헌정 질서의 중단과 유신 헌법을 발표, 국가가 초법적 권한을 갖고 1인 영구 집권을 꾀하는 국가 폭력 불사를 제도화시킨 것이다. 명분은 5천년 역사의 한민족 빈곤 타파와 남북한 갈등 관계 속 안보 강화였다. 당시만 해도 굶어 아사자가 속출하는 보리고개와 먹여주기만 해달라는 식모가 존재하고 북한 김신조 특공대가 청와대를 목표삼아 침투하는 공포 분위기가 만연했다.

유신체제 공과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견해가 다르다. 하지만 공통분모를 보면 폭력적인 인권 침해, 그런 가운데 중화학공업 육성을 통한 안보 강화, 경제적 발전 추구등의 요약이 가능하다. 추가한다면 사회적 질서, 문화 수준 향상등으로 오늘 날 한류 붐의 토양을 조성했음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따른 저항은 철저한 응징으로 싹을 잘랐다. 대통령 긴급 조치의 연속적인 발표와 함께 초법적으로 당시 중앙정보부와 보안사, 수경사들이 반대자들을 잡아들였다. 요즘 인혁당 사건이 다시 회자되는 이유다. 대법원 판결 다음 날 바로 사형을 집행한 것은 누가 봐도 너무했다. 대선 직전 이를 핑계 삼아 박근혜 후보를 공격하는 야당 측 저의는 충분히 알만 하다.

하지만 이 기간중 국가 역량을 집중, 안보와 경제발전 면에서 괄목할 성과를 거둔 것은 사실이다. 우선 80년까지 목표 삼았던 수출 100억달러, 1인당 국내소득(GDP) 1000달러 달성이 77년에 조기 달성된다. 중화학공업 육성이 본궤도에 오르자 그때까지 가공 조립 무역에 목을 맸던 기업들은 중후산업 쪽으로 방향 선회를 하며 경제 체질의 변화를 시도하게 된 것이다. 철저한 산업보호와 국가 지원이 이뤄낸 캣치 업의 사닥다리 효과임에 틀림없다.

부자되는 간단한 방법은 부자 아버지를 갖는 것이라고 현인이 말했지만 한국은 지난 5000년 긴 역사 가운데 부자 아버지는 거의 없었다. 그나마 몇 안되는 부자 아버지들은 제 식구, 제 가문 돌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런 판에 유신체제가 한국의 오랜 빈곤과 국제적 모욕을 털고 오늘 날 GDP(국내총생산) 2만달러를 훌쩍 뛰어넘은 채 올림픽 5위 국가로서 더 이상 엽전 타령을 하지 않게 한 바탕이 된 것은 아이러니다. 장교수의 사닥다리 걷어차기와 따라잡기는 이점에서 18대 대선 후보인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에게 매력 포인트임이 틀림없다.

반면 민주당으로선 장교수가 전남 광주 명문가 장재식 전산업자원부장관 아들로서 신자유주의 글로벌리즘에 반대하면서 경제민주화 박차에 힘을 더 하라는 주장이 솔깃할 수밖에 없다. 장재식씨는 필자가 올챙이 기자 시절 개청 초기 국세청에 드나들 때 머리 좋은 바둑 고수의 국장급 간부였다. 온화하면서도 매우 이론적이어서 개청 초기 국세청의 행정과 세무 정책을 수립하는데 기여가 컸던 분이다. 과연 장교수가 어느 쪽 콜을 받을 것인가. 아니면 정중동 할 것인가.

장교수는 스스로를 성장론자로 치부하면서도 글로벌리즘에 그리 찬성적이지 않은 것 같다.하지만 ‘상품이 국경을 넘지 않으면 군대가 넘는다’는 속설을 무시해선 안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70년간의 평화가 지속된 이유는 분명 세계화 덕분이다. 더욱이 최근 한국이 무디스와 핏치 양대 세계 신용평가회사로부터 상향 등급을 받고 특히 일본을 앞섰다는 배경에 한국이 그동안 세계화를 잘 추진해왔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무역으로 먹고 사는 나라가 된 지금 장교수의 사닥다리를 아니, 처음 이말을 쓴 프레데릭 리스트의 유치산업보호론을 어찌 평가해야 할지 생각을 재정립해야 할 것이다. 유신체제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박정희 긴급조치가 무수히 인권 탄압을 가져왔지만 국가 위급시 미국의 링컨대통령도 긴급조치를 통해 수천명을 국가 배신과 반역죄로 투옥, 후방 안전을 꾀하고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공화를 위한 소수 희생을 어느 시기까지 안타까워해야 하는가는 정말 규명하기 힘든 철학적 과제다. 그리스와 로마와 중국의 만리장성을 가본 뒤 느낌은 개인마다 다를 것이다. 분명한 것은 유신체제를 통해 70년대 한국에 국가 폭력이 난무한 반면 안보와 경제발전을 이루고 나아가 문화적 국가의 토양인 사회질서 유지의 필요성을 그나마 배웠다는 것이다.

사다리 걷어차기에 호의적이 아니라면 선별적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확대는 대안이다. 장하준교수의 역사 인식과 현실 인식이 다음 정권에서 빛을 보아도 무방할 듯 싶다. 그건 여든 야든 마찬가지다. 특히 재벌해체보다 사회적 복지 확대에 관심이 있다면 더욱 그렇다. 유신체제의 폭력 국가 기억을 씻는 길은 시간이 약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