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가 무기력증세에 빠졌다.'
   정부와 한국은행,일부 관변 연구기관을 제외하고 국제기구나글로벌 투자은행(IB) 등이 최근한국경제에 내린 진단이다. 1000조원에 이르는 가계부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저출산-고령화로 인한생산가능인구 감소, 부동산가격 버블 붕괴, 잠재성장률 하락, 내수 부진, 디플레이션 조짐,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는 재정건전성등이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이라는 게 주된 이유다. 일각에서는 한국경제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답습하게 되는게 아니냐는 비관론마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출산율 급락에 따른 노동력 감소는 이웃 일본의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한국경제의 회생에 치명적인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현재와 같은 출산율(2012년 현재 1.3명)이 지속될 경우 국내총생산(GDP)대비 노동인구는 매년 1.1%씩 줄어든다. 노동인구의 감소와 노인비율 급증은 노인부양 부담 증가와 건강보험 재정 파탄으로 귀결된다. 올해 기준으로 15~64세 생산가능인구의 6명이 65세 노인 1명의 부양부담을, 젊은층(25~49세 핵심생산인구)의 3.2명이 노인 1명의 부양부담을 떠맡고 있다. 하지만 10년 후에는 젊은층 2명이 노인 1명을 책임져야 한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2050년에는 한국의 노인부양비율은 61%로 일본 다음으로 세계 2위(스탠더드앤드푸어스 자료)에 이를 전망이다. 게다가 출산율 급락은 '늙은 한국'으로 귀결된다. 산업현장에 중늙은이들만 북적거릴 거란 얘기다. 통계청이 발표한 인구추계 시나리오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인구 중 중위연령은 올해 39.7세에서 10년 후에는 44.9세, 20년 후에는 49.9세로 치솟는다. 오늘날 기준으로 말한다면 한국의 평균 연령층이 민간기업의 '명퇴' 연령에 이른다는 뜻이다.

   생산요소의 핵심인 노동력 감소는 한국경제의 기초체력이라 할 수 있는 잠재성장력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노동 투입기여도가 갈수록 떨어진다는 뜻이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말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의뢰해 분석한 결과 한국경제의 잠재성장률이 2020년까지 3.8%를 유지하다가 2021년부터 10년간 2.9%, 그리고 다음 10년간에는 1.9%로 추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생산가능인구 감소 외에 비효율적인 장시간 근로에 따른 낮은 노동생산성과 대외적인 환경변화에 취약한 높은 수출의존형 산업구조 등을 감안해 추정한 한국경제의 잠재성장률은 이보다 더 떨어진다. OECD는 2017년까지 3.4%, 2018~2030년 2.4%, 2031~2050년에는 1%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2030년 이후에는 신규 일자리 창출이 불가능한 셈이다.

   지나치게 높은 가계부채가 소비 부진과 내수 둔화로 이어지면서 기업의 투자 감소와 고용 둔화, 가계부채 심화라는 악순환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노동인구 감소와복지 수요 폭증에 따른 잠재성장력 하락, 국가 재정건전성의 악화라는 한국경제 토대 붕괴가 도사리고 있다.

   이를 예고라도 하듯 국제적인 컨설팅회사인 맥킨지는 지난 4월 '한국, 새로운 성장공식이 필요하다(Beyond korean style: Shaping a new growth formula)'라는 96쪽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맥킨지는지난 1998년 외환위기 직후에도 한국 대기업의 엄청난 부채와 생산성 감소 등을 외환위기 주범으로 지적한 보고서를 낸 바있다. 맥킨지는 '신화'로 일컬어졌던 한국경제의 성장공식이 더 이상 유용하지 않다면서 새로운 성장경로를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맥킨지는대기업의 35%에 불과한 중소기업의 낮은 생산성(중소제조업은 대기업 제조업체의 27% 수준), 전체 가구부채의 30%에 이르는 사교육비와 주택 부채, 11%대에 이르는 높은 '비공식' 실업률, 300만명에 달하는 워킹푸어, 중소기업 매출의 85%에 이르는 대기업 하청구조 등을 문제점으로 거론했다. 특히 OECD평균 57%에 훨씬 못 미치는 맞벌이 비율(44%)이 한국 가계의 취약한 소득창출 구조이자 장시간 근로 및 낮은 노동생산성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정부도 지난 5월29일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린 첫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KDI, 골드만삭스, 맥킨지, 삼성경제연구소 등 4개 국내외 기관에 의뢰해 작성한 '한국경제에 대한 인식과 향후 정책과제'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 보고서 역시 2000년대 들어 평균 4.5%에 달하던 성장률이 2010년 이후 3%대로 떨어지는 '저성장 장기화' 추세가 고착화되면서지니계수 상승으로 분배구조가 악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 요인으로 요소투입중심 성장의 한계, 일자리 없는 성장으로 요약되는 대기업 중심 경제의 고용효과 약화, 중소기업 경쟁력과 성장 부진, 저부가가치 위주의 서비스산업, 가계 지출의 고비용영역 확대 등을 꼽았다. 저출산-고령화 요인만 제외하면 지난해 12월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대한민국 중장기 정책과제' 보고서와 맥락을 같이한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지난 6월과 7월 하반기에 우리 경제가 회복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기대 아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7%와 2.8%로각각 0.3%포인트, 0.2%포인트 상향 조정했다. 하지만 국제통화기금(IMF)은 미국의 양적 완화 축소에 따른 글로벌자금의 회귀 가능성과 글로벌 교역 위축 가능성 등을 들어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 등주요 신흥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5.3%에서 5.0%로 떨어뜨리는 등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연초 3.3%에서 3.1%로 낮췄다. 세계은행도 세계 경제성장률을 연초 2.4%에서 2.2%로 하향 조정했다. 이에 앞서 글로벌 11개 투자은행들은 한국의 올해성장률 전망치를 연초 평균 3.0%에서 2.7%로떨어뜨렸다. 우리나라 정책당국자들과는 달리 글로벌 경제여건이 하반기에도 그리 우호적이지 않으리라는 판단에 따른 결과다.

   과도한 비관론도 경계해야하지만 섣부른 낙관론은 더 큰 화를 부른다. 적절한 정책 수단을 구사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책당국자들은 추경 편성이라는건강보조식품 복용과 아직도 시장참가자 사이에서 개념조차 모호한 '창조경제'만 되뇌이면서 한국경제가 곧 저성장의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듯이 강변한다. 수술을 하지 않고 식이요법과 창조경제 마인드 콘트롤로 한국경제가 안고 있는 '저성장 병'이 치유될 수 있다면 더하 나위가 없겠지만 경제에요행이란 있을 수 없다. 지금이라도 한국경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문제점을 직시하고 환부를 도려내는 등 근본적인 수술에 나서야 한다. 직역이기주의와 정치권의 편가르기 경쟁, 기득권 장벽에 막혀 수십년째 한걸음도 내딛지 못하고 있는 고부가가치 서비스시장의 규제를 혁파해야 한다.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그것이 한국경제에 드리운 우울한 그림자를 걷어내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