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언론인포럼

<다음 글은 최근 어떤 언론인 단체에서 청탁을 받아 제출했던 원고입니다. 제목이 <성공적인 언론인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필자는 그 소재를 시작으로 작금의 언론 환경에 대해 글을 전개해 보았습니다. 관심 있는 언론인들이 한 번 보시면 어떨까 해서 시장경제포럼 홈페이지에도 올려 봅니다>

글쓰기를 생계로 삼았던 언론생활 삼십여 년을 돌이켜 보니 썩 내키지 않는 글을 마지못해 내보내야 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바로 이 글도 그런 종류의 글이다. 우선 대상이 ‘언론인’이라 그렇다. 이 글의 독자인 언론인들은 아마도 목사님 설교 듣는 신자들처럼 뭔가 들을만한 ‘꺼리’가 있는지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머릿속에 빨간 볼펜 딱 꺼내 들고 채점하려는 자세로 이 글을 마주하려 할 것이다. (그게 우리들의 직업병인 걸 어쩌겠는가).

집필이 선뜻 내키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거북한 제목에 있다. <성공적인 언론인으로 가는 길>이라니, 자전적 경험을 쓰려면 자칫 자기자랑이 될까 미리 낯이 뜨거워져 못쓰겠고, 그렇다고 언론인으로 성공하는 매뉴얼을 갖고 있다면 기꺼이 이 난을 빌려 공개하겠지만 그런 게 있을 수도 없으니 이 또한 난처하다. 언론인이 된 것 자체가 인생에서 일단 성공한 것이니 항상 기쁜 마음으로 그냥 열심히 사시라 말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런데 언론인에게 성공이란 건 도대체 무엇일까. 그 자체가 간단치 않은 화두이다. 예컨대 독자에 아첨하는 처세서로 대박을 터뜨린 저자가 성공한 사람인가 아니면 팔리지는 않았지만 시대에 남는 양서를 집필한 이가 성공한 작가인가. 가령 아인슈타인이 위대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어느 대학의 학장이나 총장 같은 감투를 썼기 때문일까. 오히려 그런 보직을 맡는 순간, 그는 평생 종사해 오던 연구 분야와 작별을 고하게 되고 그 때부터 교수나 학자라기보다는 학장이라는 교육 행정가가 되고 만다. 그리고 그 결과 인류는 아마 지금까지도 상대성 이론이라는 중요한 진리를 모르고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가 성공했다고 하는 이유는 바로 상대성이론 같은 중요한 논문들을 남겼기 때문이다.

이것은 언론에서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언론사에서 높은 직급에 오르는 것이 성공인가 아니면 비록 평기자로 늙더라도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글을 유난히 많이 남긴 사람이 성공한 언론인인가. 물론 둘에 다 해당하는 것이 좋겠지만 굳이 하나를 택하라면 나는 후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누가 신문사 편집국장을 맡게 되었을 때, 그리하여 사실 기자생활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어졌을 때, 주위인사들이 “낙심 말라. 임기마치면 다시 기자할 수 있을지 혹시 아느냐”고 위로하는 게 아니라 사무실이 배달된 난 화분으로 순식간에 뒤덮이고 한동안 축하전화 받기에 바빠지는 것이 세상사다. 나는 젊은 언론인들께 이런 식으로 성공하는 언론인의 길은 권유하고 싶지 않다.

돌이켜보면 언론인이 됐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성공한 인생이라고 인정받던 시절이 있었다. 불과 한 세대 전, 즉 20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언론인은 우리 사회에서 그런 존재였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사이에 네티즌들과, 넘쳐나는 평론가들이 언론인의 자리를 대신하는 세상이 되고 있다. 케이블에, 인터넷에, SNS도 모자라 요즘에는 안녕하시냐는 안부를 묻는 황당한 대자보까지 등장해 서로가 서로에게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세상이 됐다. 아무도 읽지는 않고 써대려고만 하고, 듣는 이는 없는데 서로가 말하려고만 한다. 헛된 소리들이 범람하다보니 글과 말의 가치는 사라지고 오염된 글자와 소리만이 허공을 채우는 세상이 됐다.

이런 판에 정통언론의 미래를 누가 예측할 수 있겠는가. 앞으로 20년 후 쯤 이면(어쩌면 훨씬 더 이르게), 옛날에 언론사란 게 있었고 ‘기자’란 직업이 있었다고 신세대 젊은이들에게 설명하게 될지도 모른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기자가 ‘무관의 제왕’이니 하는 쑥스러운 말은 기억에서 사라질 것이다. 과연 한 세대 후, 아니 반 세대 후에도 ‘성공적인 언론인’이란 제목으로 글을 쓸 수 있을까.

독재에 항거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오도된 여론에 맞서는 것이다. 세상이 넘치는 정보로 혼란스러울 때 옥석을 구분해 진실을 전달해주는 것이 이 시대 언론인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하고 절실한 역할이다. 비록 독자의 구미에는 맞지 않더라도 진실을 보도하려는 용기를 갖는 것이 이 시대 언론인의 덕목이다. 자칫 ‘여론이 어떻게 되어 갈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언론인이 미리 마음 약해져 포기하는 일은 없을까 걱정되는 것이 요즘이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대중에 영합하고 싶은 유혹을 극복하는 언론인이 곧 진정한 성공적 언론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