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기업인의 자살과 그로 인한 파문으로 나라가 소란스럽다. 안타깝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정말 아쉬운 것은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분노하고 잘못한 사람을 찾아내 벌을 주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고민이 더 필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한국 사회의 부패를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하는 근본적인 문제 말이다.

 일차적으로 거론되는 것은 당연히 공인의 도덕과 윤리의식이다. 물론 공인에게 도덕과 윤리를 강조하는 것은 부패를 없애는 데 중요하다. 하지만, 단순히 이를 강조하는 것만으로 부패를 근본적으로 제거할 수는 없다. 모든 나라에서 부정부패는 불법이며, 나라마다 강도는 다르지만 처벌을 받게 마련이다. 그러나 윤리규범을 강조하거나, 가혹한 처벌로 위협을 강화한다고 해서 부패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부패는 이른바 정부의 시장개입과 공권력이 지니고 있는 경제적 가치를 기본요건으로 한다. 부패의 당사자들 역시 이성적 의사결정자로서 그로 인한 이익을 위험이나 처벌의 비용과 비교하게 된다. 이익이 크고 예측 가능한 위험이 낮으며 설사 처벌받더라도 강하지 않은 처벌일 가능성이 높다면 분명히 더 많은 부패가 일어날 것이다. 결국 부패는 개인적인 윤리문제만은 아니다.

 흔히 정부의 시장개입은 이른바 시장의 불완전성에 기인한다고 한다. 그러나 정부의 시장개입은 어쩔 수 없이 특정집단이나 개인에 대한 혜택 또는 특혜수여의 가능성을 높인다. 이를테면 규제시장에서 개인이나 집단은 수요자인 반면 정치인이나 공무원은 공급자고, 부패는 규제가 정치시장에서 매매되는 과정에서 발생하게 된다. 역설적이지만 시장실패의 보완을 위한 정부의 개입이 오히려 정부의 실패를 초래하는 것이다. 결국 부패는 경제적 지대를 비합법적으로 추구하는 것이며 비대한 권력을 둘러싸고 생기는 필연적 현상이라고 할 수도 있다.

 정치, 사회적 문화의 차이도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정부의 힘이 강할수록 부패의 확률은 높아진다. 법과 규제는 모호하고 그를 해석할 수 있는 권리는 자의적이며, 규제를 가하고, 엄격한 조사를 결정하는 권리마저 정부의 재량권에 달려 있다면 부패의 유혹은 더욱 커진다. 반대로 법과 규정은 공정하며 투명한데다 구체적이어서 자의적 해석의 여지가 없다면, 게다가 부당한 일을 겪는다 해도 법에 의해 정당한 결과를 되찾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면 부패의 여지는 줄어들 것이다

 오래전 경남기업의 베트남 투자자산 매각은 타결직전이었다. 흡족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매각이 이루어졌다면 규모는 줄더라도 회사는 부채를 정리해 새 출발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금융지원이 갑자기 나오게 됐고 타결직전까지 갔던 매각은 없었던 일이 되었다. 그리고 오늘의 상황까지 이어졌다. 당시 금융지원을 했던 은행은 공적자금이 투입돼 특히 정치권과 금융당국의 영향을 많이 받는 곳이었다,

 부패가 정치적 경제적 발전에 의해 자연적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른바 고객과 후원자라는 관계는 정치발전이나 제도화의 어느 단계에서든 등장할 수 있다. 부패는 정치적 경제적 불평등과도 높은 상관관계를 갖는다. 쉽게 뿌리 뽑히지는 않을 것이다. 국제투명성기구의 부패지수 비교자료를 보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선진국 평균에 훨씬 못 미칠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저개발국에 비해서도 점수가 낮다.

 결국 부패를 낳는 것은 시장이라기보다는 정부다. 사정이 이렇다면 일반적으로는 정부가 스스로 자원배분의 강제력을 최소화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정치가 경제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줄여서 정치권력이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게 이권이나 특혜를 제공할 수 있는 권한을 원천적으로 제거하는 것이다. 자원배분의 강제력이 사라지고 나면 기업에게 남는 것은 경쟁해야 하는 시장뿐이다. 그렇게 되면 기업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정치권력이 주는 특혜가 아니라 가격과 품질을 통한 경쟁력이 될 것이다. 소비자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기업은 사라질 수밖에 없고 경쟁력이 떨어지는 기업이 특혜로 인해 시장에 남아 비효율을 유발하는 일도 없어 질 것이다. 큰 정부, 모호한 정책, 불완전한 규제야 말로 부패의 온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