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점 특허전쟁이 막을 내렸다. 전쟁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다. 이제 사업자로 선정된 기업들은 5년 동안 면세점을 운영하게 된다. 이번이 기존 면세점 특허권 갱신에 대한 것이었다면 지난 7월에는 신규면세점 입찰이 있었다. 서울 3곳, 제주 1곳의 시내면세점 특허를 놓고 모두 24개의 사업자가 뛰어들었다. 면세점이 돈을 버는 것은 특허라는 이름의 독점적인 시장구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봐야 5년마다 경쟁 입찰을 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보면 언젠가는 특허제도 폐지와 신고제 도입이 필연적이다. 단기적으로 봐도 면세점 사업이 항상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것은 아니다. 시내면세점은 지난 1989년 29곳까지 늘어났지만 지금은 17곳이다. 면세사업은 국가의 경제 상황과 정치 상황 같은 외생변수에 큰 영향을 받아왔다. 여행객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사업구조라서 안정적인 매출과 영업이익을 장담하기도 어렵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2003년 사스파동 같은 악재가 겹치면 대책이 별로 없다. 게다가 수요예측에 실패하면 재고부담이 크다. 대부분의 재고가 고가이기 때문에 부담은 더 가중된다.

 기업들이 면허사업에 몰리는 것은 비단 면세점만이 아니다. 외국인 카지노가 포함된 복합리조트를 2개 내외로 추가 조성하겠다는 발표가 나오고 복합리조트 사업을 신청한 국내외 기업은 무려 34개였다. 투자하겠다는 돈만 1조원씩 잡아도 34조원이 넘는 엄청난 돈이 복합리조트 앞에 줄을 섰다. 하지만 복합 리조트 사업 역시 수익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중국 관광객들을 겨냥하고 있지만 더 많은 중국관광객이 계속 들어온다는 법은 없다. 게다가 근본적인 문제지만 특허권으로 보장되는 사업은 어느 사업이든 규제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당초 사업을 신청했다가 뒤늦게 투자를 포기하거나 고민하는 기업들은 중국 정부의 카지노 규제를 우려한다. 이건 나 혼자 잘해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12월까지 정부가 선정할 사업자는 단 2곳이다. 34개 사업자 중 2곳을 제외하고 떨어질 32개 회사의 투자금은 역시 은행에 묶이게 된다. 지난 7월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발표한 추가경정예산이 11조8천억 원이었다.

  특허권은 기본적으로 경제학에서 흔히 말하는 지대를 이익으로 얻는다. 이를테면 규제라는 울타리로 얻는 독점적인 이윤이다. 당연히 규제에 기반을 둔 이익이기에 근본적으로 기술혁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수익을 얻지만 반면 규제변화에 취약하다. 면허를 유지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고 아예 규제 자체가 바뀌면 사업의 환경부터 달라진다. 면세점이나 복합리조트만이 아니라 TV홈쇼핑이나 인터넷 은행을 비롯한 정부의 허가를 필요로 하는 모든 사업이 그렇다. 정부가 특허사업의 권한을 갖고 있고 그 특허권을 얻기 위해 또는 이미 받은 특허권 연장을 허가받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면 기업에 필요한 것은 영업능력이나 혁신적인 기술보다는 정부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여론을 호의적으로 만들어내는 능력일 것이다. 과감한 투자와 기술개발을 통한 혁신으로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아 치열한 시장경쟁에서 이겨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1974년 12월 극심한 경영난에 시달리던 한국반도체의 지분 50%를 인수한다. 돈이 남아서는 물론 아니었다. 보장된 수익이 확실해서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삼성의 반도체 사업을 무모하다고 말했다. 그룹 내부에서도 반도체 사업에는 회의적인 분위기였다. 비서실에서는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을 내렸고 심지어 정부에서도 투자 과잉에다 기술자가 없다며 말렸다. 아니나 다를까 계속 적자를 내다가 결국 자본금을 다 까먹기도 했다. 당시 삼성반도체는 삼성 안에서 가장 가기 싫어하는 회사였다. 반도체 투자는 이후 13년 연속 적자였고 적자 규모도 컸다. 하지만 혁신과 도전은 쉽게 생각하기 힘든 보상을 낳는다. 1988년 삼성의 반도체 사업은 첫 흑자를 냈다. 흑자 규모는 그 동안의 누적 적자를 모두 만회하고도 남았다.

 1974년 7월. 현대는 드디어 1년에 5만6천대까지 생산할 수 있는 자동차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투자 규모로 따져서 조선소보다 더 큰 모험이었다. 주변의 반응은 싸늘했다. 그것도 당연했다. 하루 6대 겨우 자동차를 조립이나 하던 회사가 1년에 5만6천대를 어떻게 만들겠는가. 시장도 보장된 것이 아니었다. 당시 국내에서 연간 판매되는 자동차 수는 천대도 채 되지 않았다. 한 마디로 현대의 자금력과 시장 상황, 기술수준을 모두 감안할 때 5만대의 자동차 생산기지를 만든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었다. 중동에서 건설 사업을 하면서 땀 흘려 번 돈을 다 쓰고 실패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정주영 회장은 수출로 돈을 벌면 된다며 밀어붙였다. 그것도 독자 개발을 고집했다. 미국은 독자 개발 포기를 권했고 미국 자동차 회사들의 조립생산기지가 되면 쉽게 돈을 벌수 있었을 텐데도 말이다. 그리고 포니가 탄생했다. 포니를 통해 한국은 세계에서 16번째로 독자적인 자동차 생산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됐다.

 우리가 이룩한 경제 기적은 꿈을 가진 기업들에 의해 가능했다. 기업은 돈을 벌기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다. 특허권에 의존하는 사업은 비교적 안전한 수익을 보장하지만 제도의 변화와 규제에 취약한 데다 기업의 도약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이른바 창의적 혁신, 모험적인 도전과는 거리가 멀다. 지금 세계의 선진 기업들은 새로운 문제를 발견해서 정의하고 도전한다. 모든 도전이라는 게 그렇지만 도전의 결과는 항상 불확실하다. 하지만 때로 도전은 성공이 아니라 오히려 실패하기 위해 하는 것이어야 한다. 삼성의 이병철 회장은 사업을 선택할 때의 기준으로 국가적 필요성과 국민의 이해, 그리고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을지를 본다고 했다. 현대의 정주영 회장은 가능성이 높은 일을 해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원하는 일에 도전해서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혁신 기업은 실패하기 위해 도전한다. 우리 기업은 무엇을 위해 도전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