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부터 2006년까지 7년동안 미국 NBC방송에서 방영됐던 웨스트 윙(The West Wing)이라는 미드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케이블 채널을 통해 방영되면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미국 백악관을 무대로 만들어진 이 정치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민주당 출신 제프 바틀렛 대통령이다. 그는 경제학 교수출신이다. 그것도 평범한 교수출신이 아니라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세계적인 학자다. 그런 사람이 뉴햄프셔 주지사를 거쳐 미국 대통령이 됐던 것이다. 물론 이건 픽션이고, 바틀렛은 가상 인물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사람 중에서 한 국가의 최고지도자가 나온 적은 아직 없다. 하지만 경제학자나 경제관료 출신, 그러니까 이를테면 경제전문가 출신이 국가 최고 지도자가 된 기록은 생각보다 상당히 많다. 경제전문가의 범위를 기업가출신으로까지 확대한다면 굳이 따로 분류해서 세기가 어려울 정도로 많다.

  그러나 경제전문가 출신 국가 지도자들의 성적표를 보자면 오로지 경제적인 성과라는 측면에서만 보더라도 그렇게 후한 평가를 주기 어렵다. 1929년 세계적인 대공황의 단초를 불러온 미국 31대 대통령 후버는 성공한 기업가출신이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출신으로 기업을 하다가 텍사스 주지사를 거쳐 미국 대통령이 됐던 부시는 결국 글로벌 금융위기를 불러온 대통령으로 기록에 남아있다. 하버드대 경제학박사 출신으로 재무장관을 지내고 1988년 대통령이 됐던 멕시코의 살리나스는 한때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으나 결국 나라경제를 거덜 내고는 부정부패혐의가 겹쳐 지금도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아일랜드에 살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기업가출신 대통령이 있었지만 처음 국민이 걸었던 기대만큼 성과를 거뒀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 그대로다. 실물 경제 좀 안다고, 경제 공부 좀 했다고 경제 잘하는 게 아니다.

  정부의 경제정책이 갖는 중요성에 대해서야 따로 얘기할 필요가 없겠다. 기업이 어떤 경쟁전략을 선택하는 지에 따라 기업의 경쟁력과 운명이 결정되는 것처럼 정부가 어떤 정책을 취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경쟁력과 국민경제가 좌우된다. 우리나라가 개발 연대에 채택했던 경제정책은 선택과 집중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불균형 성장전략이었다. 대기업 중심, 중화학공업중심, 수입대체산업 육성과 수출주도형 성장전략이 그것이다. 특히 수출주도형 성장전략은 좁은 내수시장과 낮은 국민소득을 극복해내는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물론 이런 평가는 결과적인 얘기일 뿐이다. 지금 경제정책의 내용은 과거보다 더 복잡해졌고 반면에 정부가 가진 정책수단은 줄어들었다. 미래는 예측하기 어렵고 국민의 요구수준은 날이 갈수록 높아진다. 정책 결정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할 수 밖에 없겠다. 사실 모든 경제정책은 일반적으로 비용과 편익에 기반을 둔 경제적인 합리성에 대한 판단을 일단 거치게 된다. 이건 이른바 전문가의 몫이다. 하지만 경제적인 합리성은 좋은 정책이 되기 위한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일 뿐이다.

  정책의 실패에는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우선 예측이 잘못되는 경우가 많다. 거기에 동원 가능한 자원은 항상 부족하다. 필요한 재정정책이나 통화정책을 정확하게 수립하는 것도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정책목표는 보통 충돌하며 목표의 우선순위를 선택하는 일은 쉽지 않다는데서 비롯된다. 정책목표 사이에 충돌이 생길 때 정책을 결정하는 일은 경제적인 합리성을 넘어선 판단을 필요로 한다. 결국 어떤 정책이든 정치적인 판단이 개입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정치적 판단은 수치로 계산하기 어렵다. 정책 담당자들이 당장 예정된 선거에 대비하기 위해 빠른 경제회복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장기적인 경제의 잠재력제고를 위해 재정적자의 감축과 낮은 인플레이션을 먼저 선택할 것인가 하는 결정은 경제전문가의 수준을 넘는 판단이 필요하다.

  그렇게 보면 경제정책은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 정책을 어떤 형식과 절차를 통해 결정할 것인가 하는 결정체계의 문제가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결론이 가능하다. 바람직한 정부정책의 모습은 분명하다. 일관성 있고 효율적이며, 결과적으로 자원의 최적배분을 가져다주면서 장기적이고 일정한 방향성을 갖춘 그러면서도 국민들에게도 충분한 설득력을 가진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정책이란 없다. 정책은 결국 유한한 자원의 의도적인 배분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 결정은 선택이며 선택에 필요한 것은 결국 리더십이다. 과거 우리는 행정부 우위의 정책결정체계를 갖고 있었고 그래서 정부의 정책결정은 정치와 사회의 영향으로부터 독립해서 이뤄졌다. 하지만 그런 시대는 끝났다. 이제 실제 경제정책을 개선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유용한 정책 결정을 이루기 위한 ‘사회적 합의’이고 그 합의를 도출해내는 리더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