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10월 20일 토요일 저녁 8시 25분, 백악관의 론 지글러 대변인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워터게이트 사건 특별검사 아치볼드 콕스의 해임을 발표한다. 하지만 해임발표는 워터게이트 사건 특별검사만이 아니었다. 법무장관 엘리어트 리처드슨, 차관 윌리엄 럭켈스하우스 역시 해임이 발표된다. 과정은 이렇다. 그 날 저녁, 닉슨 대통령은 특별검사에 대한 해임을 명령했으나 리처드슨 법무장관은 이를 거부하고 사표를 냈다. 사표는 즉각 수리됐고 대통령은 이어서 법무부의 2인자인 럭켈스하우스 차관에게 다시 특별검사해임을 명령한다. 하지만 차관 역시 명령을 거부하고 사표를 낸다. 이 사표 역시 즉각 수리된다. 힘든 과정을 거쳐 결국 특별검사의 해임이 이뤄지기는 했다. 이른바 토요일의 학살사건이다. 그 이후는 우리 모두가 아는 그대로다. 1년 뒤 닉슨 대통령은 탄핵을 앞두고 사임한다.

  최순실은 대통령의 비호를 받아 청와대를 수시로 드나들었고, 대통령 연설문을 비롯한 국가기밀을 미리 받아봤다. 정부 장차관 인사를 주무르고 수많은 이권에 개입했다. 대기업 팔을 비틀어 돈을 뜯고 국가 정책을 농단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잘못이고 최순실의 잘못이다. 하지만 이 국정농단의 과정에서 많은 엘리트 관료와 정치인들은 과연 무엇을 했던가. 만약 이건 정말 안 된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다만 몇 명이라도 옆에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무 것도 몰랐다고 해도 무능했다는 지적을 들어야겠지만 몰랐던 게 아니라 반대로 오히려 국정농단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것 아닌가.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정치인들은 한 달 전만해도 최순실을 포함한 관계자들이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되는 걸 몸으로 막았다. 검찰은 2014년 11월 ‘정윤회 비선농단’ 의혹 수사라는 기회가 있었지만 의혹을 덮었고 암덩이를 키웠다. 앞장선 이들은 덕분에 승진을 하고 공천을 받고 보직을 얻었을 것이다. 정말 그렇다. 이들이 없었다면 최순실 게이트는 불가능했다. 대통령의 뜻을 따른 것뿐이라는 게 청와대 비서관들의 진술이기도 하다.

  사건에 연루돼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학자출신이기도 하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성균관대학교 교수였고 김종 전 문화체육부 차관은 한양대학교 교수출신이며 김종덕 전 장관은 홍익대 교수출신이다. 이제까지 문제가 드러난 사람들만 이렇다는 것 뿐, 많은 학자들이 지금도 권력주변을 기웃거린다. 검찰이든 정치인이든 관료든 학자든 권력으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다면 못할 일이 없는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차고도 넘친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는 권력으로부터 사랑받기 위해서라면 그래서 승진을 하고 공천을 받고 보직을 얻기 위해 무슨 일이든 다 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들은 앞장서서 권력의 손과 발이 되고 귀가 되고 눈이 되었다. 어느 누구 하나 나서서 이러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다. 손과 발이 되기를, 눈이 되고 귀가 되기를 거부한 사람은 없었다. 대통령의 무능과 함께 최순실 사건으로 드러난 것은 우리 사회 지식인들의 민낯이다. 지금 아무것도 몰랐던 척 하는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집권당의 전 대표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대통형의 측근이라면서 몰랐다고 하면 말이 안된다고 말이다.

  사실은 언론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정권만 바뀌면 경영자가 교체되는 기업과 은행들이 있다. 누군가는 전화를 하든 아니면 직접 만나든 위의 뜻이라면서 전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위가 누구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듣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타성에 젖은 언론은 이상한 현실을 목격하면서도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가 드러나야 그제야 하이에나가 되어 이빨을 드러낸다. 경제관료 출신 경제수석비서관이 멀쩡한 기업에 경영진의 교체를 요구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하지만 대통령의 눈 밖에 나서 고난을 겪어야 했다고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이 기업에 대한 소문은 이 정권 초기부터 술자리라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안주거리였다. 누구나 그런 배경이 있겠지 짐작은 했지만 문제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아닌가. 권력은 의례히 그런 것이고 항상 권력은 그런 일을 해왔으며 앞으로도 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최순실 사건으로 정권에 대한 비판이 쏟아진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바닥을 친다. 헌법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박대통령에게 쏟아진다. 하지만 권력의 부당한 뜻에 거스를 능력도 자존감도 없는 우리 사회 지식인의 한계가 더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