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훗날, 올해 2016년의 세계는 어떻게 기록에 남을까. 생각해보면 올해만큼 세계적으로 비정상적이고 충격적인 결과가 줄줄이 이어진 해도 드물다. 하나하나 꼽아보자. 지난 6월 영국은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했다. 아시아에서는 5월에 필리핀에서 막말을 일삼던 두테르테가 집권을 하더니 드디어 11월에는 세계최강대국 미국에서도 혐오발언을 일삼던 공화당 트럼프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됐고 이탈리아에서는 국민투표로 렌치의 개혁 정부가 붕괴됐다. 이렇게 죽 나열하다 보면 우리나라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정치적 혼란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이게 끝은 아닐 것이다. 내년 5월에는 프랑스 대선, 그리고 9월에는 독일 총선이 예정되어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도 어쩌면 곧 선거를 치러야 한다.

  이런 현상들의 구체적인 이유는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다. 유럽에서는 난민과 이민문제가 불만의 큰 원인이었고 미국에서는 트럼프와 맞선 상대 후보의 신뢰도 문제가 있었다. 필리핀에서는 급증하는 마약과 범죄문제가 정부의 무기력한 대처에 대한 대중들의 불만을 낳았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다 아는 것처럼 국정농단의 실상이 드러난 것이 원인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현상들을 관통하는 근본적인 힘은 결국 분노일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 쌓이기 시작한 대중적인 불안과 분노의 정서가 드디어 세계를 흔들고 있다. 기존 체제에 대한 보편적인 실망감이 특별한 계기를 통해 체제에 대한 거부와 분노로 이어지면서 정치적으로 세계 각국에서 충격적인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는 주문이 드디어 세계로 번진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걸 보수 혹은 진보의 이념적 잣대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념으로만 치면 프랑스의 르펜이나 미국의 트럼프는 보수겠지만 영국의 코빈이나 미국의 샌더스는 진보다. 결국 분노하는 대중이 원하는 것은 이념이 아니라 변화다.

  생각해보면 변화를 요구하는 동력, 그 분노의 원인은 경제적 양극화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세계적으로 고용이 따르지 않는 질 낮은 성장이 계속되고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 지난 34년간 저소득층의 소득은 물가상승률을 감안해서 보면 거의 제자리걸음을 했다. 반면 상위 1% 부유층의 소득은 3배로 늘었다. 평균 소득은 60% 가까이 올랐는데 그러니까, 성장은 할 만큼 했다고 하는데 하위 50%는 그런 성장으로부터 완전히 소외된 것이다. 이탈리아의 경우 청년실업률은 무려 39%나 된다. 청년실업률에 폭발한 청년들은 국민투표를 통해 기득권에 대항하고 싶었을 것이다. 높은 청년 실업률로 월급 150만 원을 받기 위해 임시직을 찾아야 하는 젊은이들의 선택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다른 나라라고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프랑스에서는 청년 4명 중 1명이 실업자다. 풍요한 선진국 프랑스에 6백만 명의 실업자와 1천만 명의 빈곤층이 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한국개발연구원이 전망한 우리나라의 내년 경제성장률은 2.4%다. 3년 연속 2%대 성장을 할 것이라는 뜻이고 3년 연속 2% 경제성장률은 관련 통계가 집계된 1970년 이후 처음이다. 저상장속에서도 가계소득 양극화는 더 심해져 최하위 계층의 가처분소득은 오히려 줄고 있다. 청년 실업률은 IMF 외환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분노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최순실은 그저 쌓아놓은 화약에 불을 붙였을 뿐이다.

  분노의 원인과 배경에 대한 이해는 어렵지 않지만 해법을 찾기는 어렵다. 분노의 이유는 타당하나 분노만으로는 저성장과 양극화 심화라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경기침체와 양극화에 대한 분노가 많은 나라에서 약자에 대한 혐오와 학대로 이어지는 현실을 생각하면 문제를 풀기는 더 어려워진다.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트럼프는 우선 3백만명의 불법이민자 추방을 발표했다. 4선 도전을 선언한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이슬람 여성 복장 부르카 착용 금지를 촉구하고 나섰다. 지금 난민과 무슬림은 세계적인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 많은 나라에서 체제와 현실에 대한 비판은 세계화에 대한 비난과 시장경제 자체에 대한 혐오로 이어지고 있기도 하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를 흔히 1차 세계화의 시대라고 부른다. 철도와 통신 같은 기술혁신이 이뤄지고 혁신경제가 부상하면서 세계가 급격하게 좁아졌고 많은 나라에서 획기적인 경제성장이 이루어졌다. 대기업들이 출현했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 이름을 아는 세계적인 재벌들이 등장했다. 한편으로 새로운 기술의 등장은 기존 산업을 붕괴시켰다. 당시 세계화와 기술혁신에 가장 큰 타격을 받아야 했던 산업은 농업이었고 세계화에 속절없이 뒤쳐져야 했던 계급은 농민이었다.

  급속한 경제성장속에서도 체제에 대한 불만은 자라고 있었고 누적된 사회적 긴장은 1929년 미국 월가에서 시작된 대공황을 맞아 파시즘으로 이어지면서 궁극적으로 2차 세계 대전으로 폭발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또 다시 자유무역과 세계화와 새로운 기술혁신은 세계 경제를 인류역사상 유례없는 풍요의 시대로 인도했다. 하지만 그 자유무역과 세계화가 이제 반발에 부딪치고 있다. 이번에는 어떻게 전개될까. 2017년이 세계적인 무역 분쟁의 원년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