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준 포스코 회장의 연임이 확정됐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 연루의혹에도 불구하고 연임에 큰 문제는 없었다. 검찰은 포스코가 광고 계열사인 포레카를 매각하면서 최순실이 실제로 소유한 광고 기획사에 넘기려 했다는 혐의를 일부 확인했다. 이 과정에서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권 회장과 접촉하기도 했다. 물론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순실씨 측이 회사를 넘겨받는 데는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이 일에 가담했던 사람들이 몇 명 구속됐지만, 포스코 측 인사가운데에서 구속된 사람은 없다. 최순실씨 쪽에서 압력을 가했었다는 사실만 부각되면서 상대적으로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사실 이 점은 놀랍기도 하다. 결국 압력은 실패했던 것이다. 포스코는 압력에도 불구하고 광고회사를 넘기지 않은 셈이다. 권오준 회장의 연임에는 광고회사 포레카 매각 과정에서 청와대와 차은택의 요구를 거절하고 투명한 과정을 통해 중소기업에 넘긴 대목도 한 몫 했다고 할 것이다.

 포스코는 어떻게 압력에 버틸 수 있었을까. 포스코는 원래 외부 압력에 강한가. 당연한 얘기지만 그렇게 말하기는 어렵다. 2015년 8월, 포항공대 이진우 교수가 포스코교육재단 이사장 취임 6개월 만에 전격적으로 사임했다. 공식적인 설명은 연구를 위해서라고 했지만 연구 때문에 이사장 역할이 어렵다면 애초부터 맡지 않았을 것이다. 이진우 교수는 계명대에서 총장까지 지내고 포항공대로 온 원로교수로 이사장에 취임하면서 대학을 휴직했었다. 관심을 모은건 이 교수가 사임 한 달 전 한 지역일간지에 게재한 칼럼이었다. 당시 시점은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배신의 정치’를 규탄했었던 이후였다. 이 교수가 쓴 칼럼의 제목은 ‘배신의 정치와 정치의 배신’이었다. 이 교수는 “자기와 같은 생각만 하도록 하고 다른 목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의 배신’이 아닐까? 정치의 본질이 민주고 정치의 배신이 독재라면, 누가 정말 배신의 정치를 하는 것인가?”라며 오히려 대통령을 비판했다. 이 교수가 이사장직에서 물러난 건 칼럼이 실리고 한 달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아무도 칼럼 때문에 이사장이 물러나야 했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포스코가 외부 압력에 강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다. 따지고 보면 포레카를 매각하기 전 이 광고회사의 사장을 맡고 있었던 인물부터 사실은 청와대의 압력을 받아 낙하산으로 임명된 사람이었다.

 포스코가 최순실게이트를 비껴간 반면 삼성에는 폭탄이 터졌다. 연루된 다수의 기업 중에서 최순실씨 일가에 직접 수백억 원을 건넨 것은 놀랍게도 삼성뿐이다. 삼성은 왜 그랬을까. 만약 삼성이 포스코와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일은 어떻게 됐을까. 계열사 매각에 압력이 있었다면 과연 삼성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지금 다시 주목받고 있는 것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정이다. 2015년 5월26일, 삼성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결의했다. 삼성은 합병의 당위성에 대해 바이오사업 역량이 더욱 강화되는 등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경영권 승계에 유리한, 그래서 이재용 부회장의 지분을 늘리는데 바람직한 방향의 합병이라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다. 합병결정이후 쏟아진 기사에서도 이런 내용은 반영돼있다. 삼성은 통합 삼성물산을 출범시키고 이재용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 작업에 가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는 식이다. 합병이 무산된다면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에서 이재용 부회장으로 이어지는 승계 작업이 차질을 빚어 지배구조 전체가 흔들리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이 합병을 지지해야 하는 이유기도 했다. 쉽게 얘기하자면 합병은 안정적인 기업 경영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이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승계 작업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는 작업이었다.

 이제 삼성과 포스코의 차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포스코는 특별히 외압에 강해서 그랬던 것이 아니다. 포스코는 삼성보다 오히려 외압에 취약한 측면이 크다. 포스코가 최순실 사테에서 비껴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부족한 정보력 때문이었다. 그저 뭘 몰라서 그랬을 뿐이다. 포스코의 한 관계자의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최순실이 그렇게 힘이 센 사람인줄 몰랐다는 것이었다. 만약 지금 알게 된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당연히 광고회사를 넘겼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반면에 삼성은 너무 잘 알았다. 이 차이는 기업이 가진 역량을 어디에 집중시키는지 그리고 기업이 정말 신경쓰는 부분이 어디에 있는지를 드러낸다. 삼성도 포스코도 경영 실적을 높이기 위해 항상 최선을 다할 것이다. 모든 기업이 그렇듯 말이다. 하지만 삼성은 실적 말고 또 신경을 써야할 부분이 있다. 그것은 당연히 지배구조문제다. 그리고 때때로 지배구조 문제는 경영 실적보다 더욱 한정된 회사의 자원을 집중해야하는 과제가 되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삼성의 탁월한 정보력도, 그리고 그 정보력에 기반을 둔 섭외력도 이 지배구조문제 때문이라고 해야 한다. 실적이 아니라 지배구조를 강화하고 보호하기 위해 이른바 정보의 삼성이 필요했던 것이다. 완벽한 정보력을 자랑하는 삼성은 일찍이 최순실의 실체를 정확히 알았다. 만약 적지 않은 사람들이 삼성도 최순실 게이트의 피해자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면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삼성이 정말 국민연금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동의를 조건으로 또는 여기에 보은하는 의미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출연하고 승마협회를 통해 최씨 일가에 돈을 지원했는지 여부야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알고 보면 삼성도 지금은 당시의 합병을 후회하고 있을런 지도 모르겠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결정 당시 알고 보면 국민연금 지분 11%보다 두 배 이상 지분을 갖고 있으면서 개인적 손해를 감수하고도 찬성표를 던진 개인 주주가 많다. 당시 출석한 개인 주주의 84%가 합병에 찬성했다. 합병 결정을 위해 열린 삼성물산 임시 주주총회에서 백발의 할머니 한 분이 어렵게 발언권을 얻었다. 1950주를 보유하고 있었던 이 할머니는 개인적으로는 엄청 가슴 아프고 쓰리지만 외국자본인 엘리엇이 공격하는 만큼 국익을 위해 찬성하겠다고 했다. 합병은 국민연금만이 아니라 이런 사람들의 표를 받아 이뤄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조금만 더 기다려주면 합병이 옳은 일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다. 아직 보여주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