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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 성 자 : 김상철/한국경제언론인포럼 회장
날 짜
:  2018-12-24
제 목 : 노무현과 문재인

 

  “더 말씀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국내문제에 대해서는 질문을 받지 않겠습니다.” 거듭되는 국내문제에 대한 질문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단호한 대답이었다. 한미정상회담을 마치고 비행기에 탄 문재인 대통령이 기자들을 찾아와 간담회를 갖고 한 말이다. 비슷한 모습이 오래 전 있었다. 지금부터 14년 전, 그러니까 201412월은 정치자금이라는 국내문제가 정가의 최대현안이었던 시점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영국을 방문하던 중에 토니 블레어 영국 수상과의 정상회담을 마친 뒤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도 당연히 이 문제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노무현 대통령은 어떻게 했을까. 질문을 받지 않겠다고 했을까. 결과적으로는 비슷하다. 답변을 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상황은 약간 다르다. 당시 질문을 받은 노무현 대통령의 말은 이랬다. “야구장에 가서는 야구얘기를 하고 축구장에 가서는 축구얘기를 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오늘은 정상회담과 관련한 얘기를 했으면 합니다. 양해를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후계자지만 노무현과 문재인은 다르다. 달라도 많이 다르다. 노무현 대통령은 불같은 사람이었다. 대통령이 되기 전 그를 만나 가끔 식사라도 하고나면 그 옛날 칼 찬 무사를 만나고 나면 이런 느낌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뭔가 비장한데, 가슴에는 큰 뜻을 품은 채, 칼집에 들어있는, 날 선 칼을 언젠가는 꺼내고 말 것 같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은 적이 많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것은 대통령이라는 정치적 지위가 아니라 나라를 송두리째 바꿔보고 싶다는 뜻에서 나온 결기 같은 게 아니었을까 싶다. 반면에 문재인 대통령은 조용하고 차분해서 마치 물 같은 사람인 듯하다. 지난 대선 토론에서 홍준표 후보에게 이보세요라고 말한 게 화제가 될 정도로 화를 내지 않는다. 평소 편안하면서도 예의바르고 점잖다. 그래서 그럴까. 예전에 당 대표를 할 때도 당시 문재인 대표의 생각을 아는 사람은 당직자들 가운데서도 많지 않았다. 공식회의에서의 격렬한 토론이나 입장 설명, 설득이나 주장 같은 건 없었다. 그저 조용히, 예의바르고 편안하게 회의가 열리고 끝났다. 그리고 누군가가 결정하고 누군가가 결정을 집행했다. 누가 어떻게 결정했는지 설명은 거의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도 문재인 대통령도 어렵게 자라기는 했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문재인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만큼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난도 더했고 차별도 더했다. 노무현 대통령이야말로 당시 비주류의 상징이었다. 오죽하면 대통령이 되고나서도 TV토론에 나와 정색을 한 채 언론이 자신을 대통령 대접해주기는 하냐고 울분을 터뜨렸을까. 그는 사실 5년 내내 싸웠다. 때로는 자신을 대통령후보로 뽑아준 정당과, 때로는 언론과, 때로는 검찰과, 때로는 재벌과, 그리고 때로는 미국과도 싸웠고 급기야는 자신의 지지집단과도 싸웠다. 그의 거친 말투와 자극적인 표현은 보통은 싸움을 촉발시키는 원인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계속되는 싸움의 결과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은 승부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정몽준 후보와의 후보단일화부터 시작해서 다른 사람들이라면 굳이 선택하지 않을 것 같은 무모한 결심을 여러 번 했고 이런 선택이 역설적으로 그를 만들었다. 문재인은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라는 이력과 그 지지 세력을 유산으로 받았다. 굳이 비교하자면 창업주와 1.5세대 정도의 유산 상속자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에 비한다면 문재인 대통령의 처지는 훨씬 편안하다. 촛불로 탄생한 정권이라는 명분은 제쳐놓더라도 지금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저항세력이라고 할 만한 힘 있는 집단이 없다. 노무현은 때로, 지지 그룹의 여론까지 거슬러 정국을 주도하려 했다. FTA도 그렇고 제주 해군기지도 그렇고 이라크 파병이 그랬다 하지만 그 결과 임기 말에는 지지그룹이 모두 떠나가 버리고 유례없이 낮은 지지율을 기록해야 했다. 반면 문재인 대통령은 지지 세력의 여론에 맞선 적이 없다. 노무현과 문재인은 정말 다르다. 노무현 대통령은 생전, 문재인 대통령을 두고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고 했다. 정말 듣기 어려운 찬사라고 하겠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어떨까. 문재인의 친구 그 누군가가 아니라 누구의 친구 문재인이라고 할 만한 친구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