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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 성 자 : 김상철/한국경제언론인포럼 회장
날 짜
:  2020-05-28
제 목 : 어떤 기업을 지원해야 할까.-부실기업 지원의 조건

 

  정부가 기간산업 보호를 위해 40조 원의 기금을 조성한다. 재정을 직접 투입하지는 않는다. 대신 채권을 발행해 산업은행에 기금을 신설한다. 정부는 원리금 상환을 보증한다. 국가재정법상의 기금은 아니어서 투명성은 부족하다. 그래서 국회에 보고하는 장치도 없다. 대신 정부가 운용하기는 편하다. 기금심의위원회를 거쳐 통제장치를 마련한다지만, 국회에 보고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지원대상은 다소 불명확하다. 국민 경제, 고용안정 및 국가안보 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업종에 속하는 기업으로 규정하고 있다. 사실상 정부가 지원 업종을 정할 수 있다. 금융위원회는 항공, 해운, 자동차, 조선, 기계, 전력과 통신 등 국민 경제에 영향이 큰 7개 업종을 대상으로 꼽았다. 첫 번째 지원대상은 항공과 해운업계로 일단 결정됐다. 다른 업종은 상황을 봐가면서 판단해 지원을 결정할 계획이라고 한다.

  시중은행들은 기금의 지원을 받을 곳을 추리는 작업에 돌입했다. 기금 지원을 희망하는 기업은 주채권은행과 협의 후 신청하는 절차를 밟는다. 기존 대출의 만기가 돌아와 신규 대출이 필요한 기업들이 우선 고려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 정책 당국의 기업 지원체계는 세 가지 방향으로 구성된다. 일시적인 유동성 부족 때문에 자본력 보강이 필요한 기간산업은 산업은행에 설치되는 기간산업 안정 기금을 통해, 다른 유동성 부족 기업은 ‘135조원+α패키지로, 코로나 19 이전부터 부실했던 기업들은 주채권은행 중심의 기업회생 프로그램을 통해 지원을 받게 된다.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재난지원금을 지급할 것인가, 아니면 일부로 한정해서 지원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우리 사회는 많은 논란을 거듭해야 했다. 그래 봐야 4조 원 정도가 더 들어가는 일인데 말이다. 그렇다면 위기에 빠진 기업을 지원한다는 이유로 이렇듯 많은 돈을 퍼붓는 것은 과연 옳은 일일까. 정부가 위기에 직면한 기업을 돕는다면 얼마나 어떻게 무엇을 도와야 할까.

  정부가 기업의 실패를 모두 감당해주는 체제는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하지만 지금 기업이 겪고 있는 위기는 다르다. 코로나 19로 인한 어려움은 기업만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다. 특히 많은 사람을 고용하고 있는 기간산업이 무너진다면 충격이 크다. 전후방 산업이 모두 타격을 입고 대규모 실직 사태로 이어지게 된다. 기업이 살아야 일자리도 지키고 경제 회복도 가능하다. 비상 상황에서 기업이 일시적 유동성 위기로 무너지기 시작하면 사회적 비용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날 수 있다. 기간산업 안정 기금의 목적도 고용안정이다. 기금을 지원받으려면 현재 고용 수준의 90%를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이 따른다. 결국, 위기 상황에서의 유동성 지원은 개별 기업에 주는 특혜가 아니라 경제 전체의 비용 대비 효과라는 기준에 근거한 합리적 판단에 따라야 한다. 정책 당국이 기업을 지원할 때 생각할 수 있는 원칙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그럴만한 가치가 있고 자격이 있는 기업만 지원해야 한다. 기업에 대한 자금의 지원은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 한정된 자원은 지속 가능한 사업 부문과 기업이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옳다. 둘째, 기업에 투입되는 공적자금은 최소화해야 한다, 꼭 필요한 곳에 지원을 집중하되 국민의 부담은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셋째, 근본적으로 기업 부실에 대한 책임은 기본적으로 경영진과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한 대주주가 져야 한다. 지원은 받지만 간섭은 말라는 식은 안된다. 결국, 국민이 부담해야 하는 돈이다. 정부로서는 간섭은 권리가 아니라 의무다.

 

  하지만, 원칙을 실제에 적용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지원할 만한 가치가 있는 기업은 어떤 기업일까. 대기업치고 국민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곳이 있을까. 그러나 부채가 많고 채무 관계도 복잡한 회사, 흔히 말하는 청산 가치가 존속 가치보다 큰 기업까지 오로지 고용효과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지원해야 할까. 이미 10년이 넘도록 제대로 된 구조조정도 없이 채권단의 자금줄에만 의존해 연명해왔던 기업도 국민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다면 또 지원해야 할까. 코로나 19 사태 이전부터 부실했던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을 가려내 구분하는 일도 생각보다 만만한 일이 아니다.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낸 한계기업이 상장사 가운데 57개였다. 코로나 19 이전에도 부실했던 기업들이 코로나를 이유로 다른 기업들과 같은 조건으로 지원을 받는다면 공정하지 못하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어디까지가 경영자의 책임이고 어디부터 코로나 때문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코로나로 인한 타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은 아무리 재무제표를 열심히 봐도 어렵다. 독일 같은 경우는 지원의 대상을 2019년 말 기준 부실기업이 아니었던 기업으로 한정했다. 미국 연준도 회사채 매입 대상을 코로나 이전에는 투자등급이었지만 현재 투기등급으로 떨어진 기업으로 한정한다. 객관적인 기준을 별도로 마련해 놓지 않으면 혼란은 불가피하다.

  정책 당국도 사실 곤혹스럽다. 지원 조건을 지나치게 느슨하게 만든다면 자칫 경영자의 부실 책임을 국민이 부담해 주는 결과로 이어지고 만다. 위기를 핑계로 삼은 무분별한 지원은 안 될 일이다. 하지만 반대로 조건이 지나치게 엄격할 경우 구조조정이나 금융중개 기능 수행에 차질이 생길 우려가 따르는 것도 현실이다. 자칫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지원 신청을 주저하게 만들면 기업의 부실이 악화될 수도 있다. 그러다 대기업 몇 군데가 정말 문을 닫기라도 한다면 허울뿐인 지원책으로 경제 위기를 방치했다는 비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근본적인 고민은 따로 있다. 정책 당국의 일시적인 유동성 지원이 기업의 경쟁력을 높여주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코로나 19 이전에도 이미 우리 경제는 복합적 위기 국면으로 어려웠다. 경쟁력 있는 산업은 줄고 있고, 저출산·고령화로 내수의 구조적 침체는 본격화한 상태다. 위기는 단순히 기업에 대해 유동성 지원을 늘린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경제는 경제구조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혁신은 세계적인 흐름이다. 전 세계의 산업 구조 자체가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비대면 거래의 확산으로 비즈니스의 본질과 소비의 양태도 달라지고 있다. 자동화와 로봇 사용은 보편적인 일이 되고 있고, 인간과 기계의 협업은 더욱 고도화되고 있다. 코로나 19는 어쩌면 변화의 속도를 더 빠르게 만들 것이다. 지원으로 버티는 기업이 혁신을 주도할 수는 없다. 전쟁은 장기전이 될 것이다. 정부의 지원은 꼭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 지원하는 것이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