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언론인포럼

새 정부가 곧 출범한다. 기대가 많을 때다. 하지만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것도 순간이다. 새 정부는 물가 불안 속에 경기 하강 조짐까지 나타나고 있는 시점에 출범한다. 해야 할 일은 많지만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게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서로 모순되고 어긋나는 방향의 대책이 필요한 일들이라는 점이다. 어느 하나에 매몰되면 다른 하나를 놓치기 쉽다. 급한 일부터 순서대로 세 가지만 정리해 보자.

새 정부가 가장 먼저 착수해야 할 과제는 장기간에 걸친 코로나19 방역 조치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에 대한 추가 지원이다. 지난 2년여간 계속돼온 코로나 시국 속에 멀 것만 같았던 일상회복이 새 정부와 함께 다가온 상황이다. 차기 정부는 코로나 이후 본격적인 일상회복을 안착시켜야 한다. 언젠가는 확진자의 격리 의무화와 마스크 착용 의무화 조치도 해제해야 할 것이다. 이미 방역 패스 등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게 직접 타격을 주는 방역 조치는 중단·완화됐기 때문에 새 정부에서는 새로운 단계적 일상회복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당선자는 공약으로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긴급구조를 약속하고, 50조 원 이상의 재정 자금을 확보해 온전한 손실보상을 진행하겠다고 했다. 재정이 투입되어야 하는 일이다.

세출 구조조정으로 필요한 예산을 마련하겠다는 말은 선거유세에서나 가능한 얘기다. 결국, 적자 국채발행을 통한 대규모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이 불가피하다. 이미 연말 기준 통합재정수지 적자 전망치는 70조8천억 원으로 늘었다. 코로나19 사태 첫해의 적자 71조2천억 원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여기서 대규모 추경을 편성할 경우, 통합재정수지 적자 폭은 사상 처음으로 100조 원을 넘어설 가능성도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이미 50.1%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물론 비상시기라는 이유로 재정 건전성은 잠시 눈감을 수도 있겠다. 당장 고민이 커지는 것은 재정지출 확대가 인플레이션을 더 자극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적자 국채 발행은 시장 금리 급등으로 이어지기 쉽다.

지금 새 정부 경제팀 발등에 떨어진 불은 물가문제다.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0년 만에 5달 연속 3%대가 이어지고 있다. 높은 물가는 민생을 악화시키고 경기회복을 저해한다. 국민의 실질소득을 감소시켜 소비가 위축되고 기업은 투자를 망설이게 된다. 일단 물가 급등세는 잡아놓고 봐야 한다. 마침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장기화하면서 세계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국제 원자재 시장에서 원유나 천연가스뿐 아니라 광물과 곡물 의 가격까지 폭등하고 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우크라이나 동부와 러시아는 대표적인 곡창 지대다. 미국 농무부에 따르면 2020~2021년 기준 전 세계 밀 수출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28%에 달한다.

물론 우리에게 가장 곤혹스러운 부분은 유가다. 국내로 들여오는 원유인 두바이유 현물 가격은 지난 8일 기준 배럴당 122.99달러를 기록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 90달러 안팎이었음을 고려하면 상승률이 40%에 육박한다. 환율도 크게 오르고 있다. 지난해 12월 1180원 수준이었던 원·달러 환율이 지금은 1250원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만큼 수입가격 부담은 커진다. 정부가 가진 정책수단도 많지 않다. 유류세 인하 폭을 현재의 20%에서 30%로 늘리는 방안, 유류세 환급, 저소득층 대상의 유가 보조금 정도가 전부다. 지금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금리 인상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맞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8월부터 금리를 3회 올렸고, 올해 한두 번 더 인상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연방준비은행도 3월부터 금리를 올리기 시작할 것이다. 물가 불안을 생각하면 당연히 금리는 올려야 하는데, 올리는 것이 맞는데, 금리 인상으로 경기가 더 위축될 수 있다는 게 문제다.

당연한 얘기지만 역시 경기 하강은 최대한 막아야 한다. 새 정부가 출범했는데 처음부터 경기가 나빠지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전망을 대대적으로 수정해야 할 판이다. 한국은행은 지난달의 수정 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종전과 같은 수준인 3.0%로 제시했다. 지난해 12월 발표한 기획재정부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3.1%였다. 그러나 오미크론 확산으로 주요 교역상대국인 미국과 중국의 성장 전망치도 각각 1.2%포인트, 0.8%포인트 하향 조정됐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고려하면 더 낮춰야 한다. 우리도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IMF도 성장률이 추가로 낮아질 가능성을 숨기지 않고 있다. 국제유가 급등 한 가지 변수만으로도 성장률 하락이 불가피한 것이 현실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국제유가가 연평균 배럴당 100달러가 되면 경제성장률은 0.3%포인트 낮아지고, 연평균 120달러가 되는 경우엔 0.4%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전망했다.

점차 일본처럼 고착화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저성장 기조 전환은 우리 경제의 최대 과제다. 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38개 회원국 가운데 꼴찌다.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2000~2007년 연 3.8%, 2008~2020년 연 2.8%에서 2020~2030년 연 1.9%로 낮아진 뒤 2030~2060년 0.8%대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대한상의가 이번 대선을 앞두고 국내 기업 450개사를 대상으로 한 기업 의견 조사에서도 기업들은 새 정부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성장 잠재력 회복 확충’(76.9%)을 꼽았다. 잠재성장률 4%는 윤석렬 당선인의 공약이기도 하다. 근본적으로 한국 경제의 체질을 바꾸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구조개혁이 불가피하다. 일시적인 경기부양대책이나 금리 인하보다는 산업구조조정과 규제 완화, R&D 지원과 같은 근본 처방을 해야 한다. 제대로 해내기도 어렵지만 성과를 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한 일들이다. 아마 새 정부는 머지않아 금리 인하와 재정 지출 확대 같은 보다 쉬운 선택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쉬운 선택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새 정부는 코로나 대응을 완료하고 물가 급등세를 잡으면서 동시에 성장의 동력도 살려야 한다. 공교롭게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정책수단은 서로 충돌한다. 성장과 복지, 그리고 안정 사이에 균형을 찾는 수밖에 없다. 공을 최소한 세 개 이상 쓰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저글링은 놀랍게도 수 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행위 예술이라고 한다. 얼핏 보면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보기만큼 쉬운 것은 아니다. 초보자가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공을 너무 높이 던지는 것이라고 한다. 목표를 너무 높게 잡아서는 힘들다. 새 정부의 정책 대응에는 만만치않은 제약이 있다. 아무래도 새 정부에 대한 기대도 조금 낮추는 게 나을 것이다.